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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일상/자기 전 물 한잔]

1.

보리 아토피 때문에 속을 끓인 지도 반년이 넘는다.

 

그나마 몸에만 나타났을 때는 계속 보습제 발라주고 심할 때는 연고도 적당히 쓰면서 조율할 수 있었는데 이젠 입 주변에 확 심해지다 보니 연고 쓰기도 조심스럽고(손을 자주 빨고 눈도 자주 비비는 터라) 얼굴 볼 때마다 마음이 쓰여서 더더욱 힘들다. 자세히 뜯어보면 즈이 언니보다 훨씬 곱상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이건만. 안 긁고 진물이라도 좀 멎어야 연고를 발라주든지 무슨 수를 낼 터인데... 

 

뽀얀 얼굴을 본 게 언제적인지 이젠 기억도 안 난다. 기린이 유치원 숙제 때문에 사진 폴더를 뒤지다가 아토피 때문에 엉망진창인 얼굴을 찍기 싫어서 작년 가을 이후로 제대로 사진 하나 찍어놓은 게 없다는 걸 알고 순간 눈물이 났다. ㅅㅁ병원에 예약을 잡든지, 아니면 유아 아토피를 잘 본다는 한의원 쪽을 알아보고 조만간 가봐야 할 듯 하다. 이젠 아이의 증세도, 그동안 마음 고생한 시간도, 내 자신도 모든 것이 혼자 감당하고 견뎌내기가 참으로 힘들다.

  

 

 

2.

기린이는 결국 알레르기 비염이 축농증으로 발전했다. 그나마 실력있고 믿을 수 있는 이비인후과가 집 근처에 있어서 다행, 또 다행. 보리는 중이염 때문에 계속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다가 고막이 터진 흔적이 있다는 둥, 청력 손실이 있을 거라는 둥 자꾸만 엄한 소릴 하는 바람에 홧김에 녀석도 이비인후과에 데려갔다. 같은 증상을 두고도 하는 말이 어찌나 다른지. -_-

가) 고막은 아무 문제 없고,

나) 양쪽 귀 모두 중이염이 있지만(소아과에서는 오른쪽만 문제삼음) 2주 동안 항생제를 먹었다면 며칠 정도는 잠깐 쉬면서 상태를 지켜봐도 무방하고, 

다) 코가 1층이라면 귀는 2층인데 아이들의 경우 코가 안 좋으면 귀가 따라서 안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일단 코 상태를 잘 관찰해야 하며,

라) 코가 좋아지면 귀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테니 항생제도 잠깐 보류해도 괜찮고,

마) 항히스타민제(씨잘액, 페니라민, 액티피드 시럽 등)는 콧물을 끈적하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증세가 호전되는 것처럼 보일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코와 귀에 안 좋기 때문에 이비인후과 원장님 본인 같으면 아이들에게는 항히스타민제를 쓰지 않는다...

등의 정보를 얻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다시 이비인후과 진료 스타트. 나도 감기가 2주 넘게 떨어지지 않아 결국 같이 진료. 기린이는 석션하면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먹 꼭 쥐고 눈을 찌푸리면서도 치료는 제법 잘 받는 편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잠투정 타이밍을 피해서 내원하는 게 관건... 한번은 오후에 데려갔다가 그놈의 진상 잠투정을 시작하는 바람에 병원을 한바탕 발칵 뒤집어놓고 돌아왔다. -_- 그뒤로는 무조건 아침 첫 진료를 보고 유치원 등원. 덕분에 보리까지 덩달아 오전 낮잠 포기하고 병원 따라 댕기느라 바쁘다. 녀석들 병원 데려갔다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 듯한 느낌. 이비인후과 원장님이 처방해준 약에 타이레놀도 같이 들어있는데 이거 혹시 제 다크서클을 보고 넣어주신 건감요? ;; 낮잠은 어지간해서는 잘 안 자는 편인데 이번에 처방받은 약은 그야말로 졸음이 쓰나미급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근 일주일이 넘도록 집안일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아...치워도 치워도 끝없는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가사노동이여! (크릉!)

 

 

 

3.

그리고 나는,

몸도 많이 안 좋고 정신적으로도 무척 지친 상태라 일단 감기가 좀 낫고 나면 상담 등을 받아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내 상태가 안 좋으면 결국 그 불똥은 아이들, 특히 대화가 가능하지만 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기린이에게 다 튀기 때문에 이대로 있다가는 더 크게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기린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감정을 폭발시킨 다음날이면 기린이 역시 더 예민해지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곤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요즘 기린이를 보며 실감한다.  

 

오늘도 찻길에서 말 안 듣고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으려하는 기린이 때문에 폭발하기 일보직전인 상태에서 겨우겨우 집에 데리고 들어오긴 했는데 잠자리에 누워서도 뒹굴거리며 딴청을 피우는 녀석에게 결국 소리소리지르고 말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아이들이 잠든 시간마저 예민한 녀석들 잠 재워주는 데 모든 것을 올인해야 하는 내 상황이 스스로도 답답해 미칠 것만 같다. 

 

내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누구에게든 상처주지 않는 방향으로 터뜨려야 하는데 그럴만한 잠시동안의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한 시간여마다 보리 보습제 바르고, 긁지 않게 손을 잡아주고, 틈틈이 손걸레질하며 먼지를 닦아내고, 아이를 재우고,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엄마와 떨어져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집에 돌아오면 어리광에 말도 안 되는 고집피우기에 골몰하는 기린이 투정을 받아주고... 매일같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바람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4.

다른 건 둘째치고 녀석들 감기며 축농증이라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두달 반 넘게 매 끼니 약 챙겨먹이는 것도 이젠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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