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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미인가(燕京美人歌)-아름다운 그림 안에 갇혀버린 그녀들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
지은이: 스메라기 나츠키(皇なつき)
출판사: 각천서점(角川書店)/B&C
권수: 총 2권 (1997)


그들은 아름답다. 경극의 주인공, 짙은 화장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그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화장을 지우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들은 더욱 아름답다. 역사의 격변기인 중화민국 초기, 아름다운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되바라진 채빈이 아니라 민홍이 표지여서 내심 다행..;;안타깝게도 작가인 스메라기 나츠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탐미주의 작가(『연경미인가』가 나왔을 당시 국내 신문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거의 빠지지 않던 단어가 '탐미주의'였다)이며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무대로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오고 있다는 정도이다. 실제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판된 스메라기 나츠키의 단행본 중 서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단편 하나 뿐이다.

『연경미인가』는 경극배우 양낙선을 주축으로 하는 1권과 마씨 집안의 넷째 아가씨인 채빈과 그녀의 친구들 이야기인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구 문물이 유입되고 군벌 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이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혼란한 시기의 북경에서 벌어지는, 그 시대에는 너무나 흔했을 일련의 사건들이 스메라기 나츠키의 유려하고 단아한 펜선 아래 펼쳐진다. 세심한 고증과 의상, 톤의 효과를 가급적 자제하고 옷의 주름 하나하나에서도 동양적 느낌을 살리려는 스메라기 나츠키의 노력 때문일까? 얼굴은 서구적인 뚜렷한 마스크이지만 그림의 전체적인 조화로 인해 『연경미인가』는 동양적 정취를 물씬 풍긴다.

집안이 정해준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올케와 연애결혼을 꿈꾸는 시누이, 군벌의 눈에 띄어서 첩으로 들어가게 되는 어린 소녀들, 집안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큰아들, 배우로서의 자긍심 이전에 동료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경극 배우…. 『연경미인가』는 북경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사를 보여주기는 하되 어떤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때 그 모습을 재현해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인정된다 하겠지만 작가만의 어떤 주제의식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름다운 그림에 빠져들다가도 스스로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약간의 '변혁'을 바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욕심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 해도 이 작품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고색창연한 싯귀를 읊어대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펜선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의상과 섬세한 손가락에 이르면 거의 홀릴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칠 뿐이다. 『연경미인가』의 그녀들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죽음으로 그 끝을 맺기도 한다. 작가는 과연 독자들에게 북경의 정취를,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일까?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 속의 그녀들은 슬프게 미소지을 뿐이다. 구습에 젊음과 자유를 저당 잡혀야 했던 그녀들을 묘사하려 했다는 것으로 만족하자. 나의 이런 아쉬움은 그녀들의 미소 한번, 휘날리는 옷자락에 봄눈 녹듯이 녹아버리니까.


2001.3.21


2005/11/26 11:55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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