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그들만이 아는 그들만의 생활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2004)
주연: 야기라 유야柳樂優彌 (아키라明) 키타우라 아유北浦愛 (쿄코京子) 키무라 히에이木村飛影 (시게루) 시미즈 모모코 (유키) 칸 하나에韓英惠 (사키) 요우YOU (엄마) 영화를 보기 전 동생과 함께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접시에 옮겨 담으며 나는 지나가는 말로 ‘휴지 들고 왔어?’라고 물었고 동생은 씹던 피자를 삼키고 가방을 뒤적인 후 ‘있어.’라고 대답했다. 작년 PIFF 때 보고 싶었지만 매진이 되어 미처 보지 못했던 영화여서 대충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틀림없이 펑펑 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이 영화를 예매할 때에도 때마침 나오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예고편만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티켓 예매처의 모든 직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채 티켓을 끊었었다). [아무도 모른다]를 상영하는 CGV 5관에는 1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편한 자리를 골라 널찍이 앉았고, 나는 동생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여행용 티슈를 꺼내어 내 옆 빈자리에 잘 챙겨놓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티슈를 챙겨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가는 10여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동생과 내가 나눈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영화 슬프다. 그지?” “응.” 사실이 그러했다. 영화는 슬펐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영화 속 아이들도 전혀 울지 않았다. 엄마가 언제 오냐고 칭얼거리지도 않았고, 배가 고프다고 아키라를 조르지도 않았다. 카메라는 그저 묵묵히 아이들의 일상을 따라갈 뿐 그들의 생활에 절대 끼어들지 않으며 일부러 아이들의 슬픔을 클로즈업하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 온 그해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아이들은 1년의 시간만큼 자라나고 영화는 아이들의 시간의 흔적을 세세한 곳에서 잡아낸다. 더 이상 발에 맞지 않는 운동화와 꼭 끼는 신발, 점점 짧아지는 바지, 제때 잘라주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란 긴 머리칼…. 어머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키라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푼돈을 쪼개 동생들의 세뱃돈을 마련하고 둘째 쿄코는 그런 오빠의 배려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시게루는 배고픔을 호소하는 대신 혼자서 종잇조각을 씹고, 막내 유키는 큰오빠가 사다준 아폴로 초콜릿의 마지막 한 알을 입안에 넣으며 빈 상자를 소중히 보듬어 안는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의 부재는 아이들을 황폐하고 위태로운 생존게임으로 내몰지 않는다. 아니, 사실이 어땠든 간에 영화 속 아이들은 바싹바싹 메말라가는 화초로 묘사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버리고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의 전기가, 수도가 끊기고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모른다. 아직 세상을,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럼 그 아이들이 정말로 불행했는가?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생활이었는가? 그것 역시, 아무도 모른다. 비록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자신들만의 공간 속에서 숨쉬고 있지만 그 공간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충만한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비없는 자식, 버림받은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야말로 그 아이들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면 서로를 보듬은 채 잠들곤 했던 그들만의 성채. 수도가 끊겨 공원에서 매일 물을 길어와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컵라면 용기에 심은 화초에 조금씩 물을 붓는다. 바람에 애달프게 흔들리는 푸른 잎들처럼, 그렇게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자신들만의 생활을 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속 배우들, 아니 아이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네들이 취했을 말을, 행동을 그대로 보여준다.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애써 자제하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가식을 정면으로 후려친다. 특히 카메라에 담기는 아키라의 모습은 1년의 세월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 초반의 조금은 앳된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하던 아이는 후반부에서 실제로 변성기 소년의 목소리를 낸다. 발목까지 오는 바지차림에 발에 꼭 맞는 운동화를 신고 땅을 툭툭 치던 아이는 비쩍 마른 몸에 종아리까지 껑충하니 올라온 낡은 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소년이 되어 거리를 달린다. 동생의 시체가 담긴 트렁크를 매만지는 그 손에서, 유키를 땅에 묻고 담담한 목소리로 동생의 시체를 만졌던 느낌을 얘기할 때 부들부들 떨리는 그 손에서, 소리내어 우는 대신 어느새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슬픔을 본다. 주위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이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무력함을 탓하는 대신 사키는 아키라와 함께 맨손으로 땅을 파고 아키라의 떨리는 손을 꼭 쥐어준다. 딴에는 아키라를 돕기 위해 가라오케에서 중년남자와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춘기 소녀―바깥세상과의 단 하나의 연결고리인 사키는 그렇게 남매의 빈자리를 채우며 그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한 축이 되어간다. 영화는 슬프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냥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게 아니니까. 영화는 슬펐다. 그네들의 표정에 언뜻 묻어나는 외로움과 피로를 보았으니까.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만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들의 삶이 고달팠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선입견일 뿐이다. 나 역시 그런 욕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안다. 아이들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정말로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영화를 본지 24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은 계속 먹먹해져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애써 멈추라 한다. 더 생각하면 나의 혼자 생각만으로 아이들의 웃음을 덧칠해버릴 것만 같으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사 온 첫날 다 함께 식탁에 모여 국수를 먹던 그네들과 그 어머니의 환한 모습만을 남겨두고 싶다. 그 역시 내 욕심과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2005. 4. 10. '창고 > 영화볼 땐 조용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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