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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냈다 [일상/자기 전 물 한잔]
미운 세 살 기린이 때문에 울컥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요 며칠간 보리 피부 때문에 한껏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가 겹쳐있던 차에, 오늘 저녁 기린이가 크리티컬히트를 먹이는 바람에(밥 안 먹고 도망다니던 끝에 좌식소파 위에 입에 가득 든 것을 퉤퉤 다 내뱉고 히히거렸음-_-) 결국 제대로 화를 내고 말았다.

내가 어리석었지. 다 큰 어른인 smk군도, 몇 번이나 곱씹어 일러주고 부탁해도 매번 샤워 후 욕조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고 나오는데다 밥 먹은 후 식탁 위를 행주로 닦아내지 않아 내 속을 뒤집어놓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 이제 태어난 지 33개월된 아기에게 일상생활의 규칙을 매번 꼬박꼬박 지켜주기를 기대하다니.

다른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기린이는 특별히 별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별나게 개구진 것도 아니다. 딱 고만한 월령대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호기심 많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하고,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 것은 괜히 더 궁금해지는 그런 것일 뿐인데, 어른인 나는 지극히 당연한 아이의 본능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왜 엄마가 피곤하고 힘든데 너는 엄마를 이해해주지 못하느냐며 화를 낸다.  

바락바락 소리지르고 악을 쓴 후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응어리진 채 풀리지 않는 화.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울고 있는 내게 기린이는 엄마, 울지 마, 하며 계속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 화를 낸 것으로 그동안 기린이와 내가 함께 쌓아온 유대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란 생각은 않지만, 매일매일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과 가사노동과 육아에 지쳐 오히려 회사에 나갈 때보다 휴직 중인 지금 아이에게 더 못난 엄마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것이 두렵다.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인 게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워봐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오래 전 한 계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새삼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이제 33개월된 내 아이보다 아주 조금 더 자랐을 뿐인가 보다. 언제쯤이면 정말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평화로운 일상에 반하는 아이의 말과 행동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 방향이 어긋나지 않도록 물길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 이제 엄마가 된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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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4 22:5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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