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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토토로-정겨움보다는, 이제는 슬프다 [창고/애니, 쉼없는 동경]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1988)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이웃의 토토로]. 이미 볼 사람은 다 보았다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럿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애니메이션. 그러나 역시 극장판은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본인으로서는 보고 싶었던 여럿 영화들을 다 제쳐두고서라도 꼭 봐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고, 결국은 '이왕 나서는 거 지하철 2호선도 타보고 새로 생긴 롯데 시네마에 가서 보는 거야!!'라고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역시 백화점은 백화점. 세일 기간이었는지 사람들은 넘쳐나고 롯데 시네마 매표소의 긴 줄은, 그리고 그 줄 밖에서 엄마를 부르며 뛰어다니는 그 수많은 꼬마들은 영화 상영 2시간 전부터 나를 암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는 것. 내 성질머리가 그 꼬마들의 괴성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수적으로 밀리고 보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입장이 시작되어 들어가보니 상황은 더욱 점입가경. 학원에서 단체 관람을 왔는지 인솔교사 3명이서 40여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어른끼리 입장한 사람은 나와 친구를 포함해서 단 6명. 이 되바라진 꼬마 녀석들은 '나 저거 책으로 봤다. 토토로는 어른 눈에는 안 보인다'라면서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고, 오프닝 화면에서 메이가 걸어갈 때에도 '토토로는 언제 나오는가'에 대한 심각한 토론들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 마음을 비워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_-++


저 나무가지는 강철로 만들어졌는가, 토토로가 버틸 수 있다는 것은. ;; 그러나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20번은 넘게 본 작품인데. 학교 상영회를 할 때도 보았는데. 그저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프닝 장면부터 그렇게 눈물이 나는건지. 넓게 펼쳐진 논과 밭, 푸른 나무들, 삐걱거리는 낡은 집, 논일을 하다 손 흔들어주는 마을 사람들, 냇가의 올챙이. 그 모든 것들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마냥 마음 아프게만 느껴졌던 것은 과연 무슨 이유인지. 계속 시큰거리는 눈가를 손 끝으로 누르다가 결국은 메이와 사츠키가 토토로와 함께 나무를 키워내는 장면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훌쩍거리며 휴지를 찾으러 뒤적이는 나를 보면서 친구는 '그렇게 감동했어?'라고 묻고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아니, 그건 감동이 아니었다. 분명히 너무 슬펐고, 그래서 그저 코를 훌쩍거리며 울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녹나무 앞에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먼 옛날에는, 나무와 사람은 친구였단다' 그렇다. 이제는 '먼 옛날'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메이가 기어들어가는 긴 나무터널도, 토토로를 찾기 위해 뛰어다닌 커다란 나무 등걸도 이젠 우리 곁에 없다. 할머니가 손수 키운 채소들을 흐르는 냇물에 담그어 두었다가 맨입으로 서걱서걱 베어먹는 그 익숙한 풍경도 이젠 불가능하다. [이웃의 토토로]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들이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존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이제 나는 눈 앞에서 토토로가 지나간다 해도 토토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고, 토토로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그 아이들을 마냥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다.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토토로를 만난다면 당신의 우산을 건네주세요. 아직 엄마의 품이 그립기만 한 사츠키와 메이. 메이에게 있어서 마치 엄마와도 같이 보살펴주는 꿋꿋한 사츠키도 엄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손에 움켜쥐고서는 울음을 터뜨린다. 괜찮을 거라고 다독거리는 할머니 앞에서 전에도 그랬다며, 돌아가시면 어떡하냐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츠키. 하지만 엄마에게 드릴 옥수수를 품에 안고 '언니 바보!!'라고 외치며 울부짖는 꼬마 메이 앞에선 마치 내가 사츠키가 된 것처럼 난처해졌다. 없어진 메이를 찾아 부르튼 맨발로 흙길을 달리는 사츠키를 보면서 내가 달리는 것처럼 숨이 가빠지고 또 다시 울먹거리고, 그리고 토토로를 찾아 헤매고.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메이를 찾아 달리는 사츠키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뭐라 해도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한밤중에 사츠키와 메이가 토토로와 함께 나무를 키워내는 장면이다. 한밤중에 큰 토토로가 아빠의 우산을 들고 작은 토토로들과 함께 씨앗을 심어놓은 곳을 맴돌고 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들은 함께 토토로들과 씨앗을 키워낸다. 씨앗은 금새 움이 터서 한 줄기 두 줄기 씩 잎을 키우고 가지를 뻗치고 화면을 가득 채운다. 숲의 정령들과 아이들이 함께 이루어 내는 조그마한 기적. 꿈이지만 꿈이 아닌, 그 때라면 그 아이들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그 아름다운 환상은 이제 그저 그 스크린 안에서 밖에 만날 수 없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아름답지만, 너무도 부럽지만 나는, 우리는 해낼 수 없는 그 옛날의 추억.

미야자키 하야오가 과연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마을에서 전화가 있는 곳이 한 집 밖에 없던 시절,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없어진 아이를 찾기 위해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니는 시절,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 예전에 조그만 TV 화면에선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그 풍경은 극장의 스크린 속에선 이제 안타까운, 돌이킬 수 없는 지나버린 과거로 비춰졌다.

그럴 바엔 차라리 그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저 따스한 이야기로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을. 토토로의 푹신한 품과 귀여운 꼬마 토토로들, 신기한 고양이 버스만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저 비디오 화면으로 보고 만족하면 된다. 만약 극장에서 다시 그들을 만난다면, 그 따뜻함이 더욱 커질 거라는 기대는 섣불리 하지 않는 게 좋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욱 좋을 때도 있는 법.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고 싶다. 내가 만약 비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토토로를 만난다면, 빗물이 저절로 굴러 내리는 자동 3단 우산을 줄 수 있을 텐데. T.T


200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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