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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피닉스(River Phoenix)-내 기억 속에서나마 편히 쉬기를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저랑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분들은 '왜 이 녀석이 아직 이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까'라고 궁금하게 여기셨을 겁니다. 네, 바로 리버 피닉스입니다. 매년 10월 31일이면 어김없이 [Stand By Me]를 빌려보고, 매년 검은 옷을 입고 다니고(훗, 아무도 알아주지 않건만. -_-), 그렇게 혼자서 '젠장 왜 빨리 죽은거야. T.T'라고 아쉬워 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엔 구구절절 쓸 얘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어김없이 영화잡지의 표지들은 리버 피닉스로 도배가 되고, 그걸 보면서 '아, 또 한 해가 지났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세계를 뒤흔들만한 히트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배우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걸까요. 왜 수많은 사람들이 리버 피닉스에게 그토록 매달리는 걸까요.

한마디로 말해볼까요?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그의 환상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토록 넘기 힘들었던 현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막연한 동경심에서 비롯되는 환상인 겁니다. 그는 이미 죽었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비디오 가게 어느 한 구석에서 뽀오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거에요.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해마지 않는 [아이다호]도 우.리.가. 바.라.는. 그의 이미지가 거의 100%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고, 안스럽고, 홀로 외로워하다가 결국은 죽어가는. 어느새 우리는, 아 '우리'라는 호칭은 근거없는 일반화가 되겠군요. '나'는 어느새 그가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리버 피닉스의 이미지는 이런 거라야만 해!'라고 정해놓고 그 잣대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거죠. 어줍잖은 삶에 대한 투정, 나 혼자만이 껴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괴로움, 그걸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는 있지만 막상 흘려넘기기엔 힘들 수밖에 없는. 그 모든 것을 '리버 피닉스'라는 존재에게 떠넘겨 버리고 그를 보면서 안스러워 하는 겁니다. 내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도취되어서 말입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CF와 TV에 출연하며 꿈을 접어야 했다는 그의 '현실'은 제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리버 피닉스는 그의 팬들의 이웃집에 사는,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10대 소년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리니까요. 이웃집 소년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는(혹은 나의 고민을 완전히 떠넘겨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사실 [아이다호]는 그의 작품 중 결코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리버 피닉스를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다호]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의 눈빛이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은 [스탠바이 미]나 [바람둥이 길들이기(케빈 클라인이 나오는, 자신이 일하는 피자집 여주인을 짝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으로 나오지요)]에서의 때묻지 않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하지만 그 순수함만큼이나 자기 고집이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가 나쁘다는건 아니에요. 다만 그의 '이미지'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지고 있다는게 문제인 겁니다. 현실 속의 리버 피닉스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을 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영화 속에서 재현되어지는, 그리고 그로 인해 돈을 벌게 되는 모순 말입니다.

자, 다르게 생각을 해볼까요? 만약 리버 피닉스가 차근차근 영리하게, 이를테면 톰 크루즈처럼 매스미디어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성공적인' 입지를 다져갔다면 그토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을까요? 불우하고 어딘가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안정된 성인으로서의 변신에 성공했다면,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내가 그를 그토록 그리워 했을까요? 연기력으로서는 인정받고 한 끗발 하는 좋은 배우는 될 수 있을 지언정 사후 10여년이 지나도록, 매년 10월마다 '아, 그가 죽었었지'라고 씁쓸하게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는 않았을 거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가 계속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은근슬쩍 바라고 있고, 그런 이미지가 절정에 이른 순간에 약물 중독(이게 또 '이미지 유지'에 의외로 중요하지요. -_-;;)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런 환상과 동경이 증폭되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죽어서 잘 되었다 싶은 것도 그가 성장하지 못한 채 대중들이 그에게 바란 것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가 그렇게도 극복하고 싶어했던 것을 죽는 순간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를 그토록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게 한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르고요.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그를 쉬게 해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검은 옷을 입지 않고, 그저 B.E.King의 노래를 들으며 슬쩍 웃기만 했지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그를 추억해본댔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그 곳에서 편히 쉬게 내버려두고, 나는 내 삶을 꾸려가야만 합니다. 이제는 슬프고 힘들고 견디기 힘든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요. 나마저 그 '환상'에, '이미지'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나는 '살아' 있으니까요.

R.I.P River Phoenix.

[Filmography]
Silent Tongue (1994)
The Thing Called Love (1993)
My Own Private Idaho (1992)
Sneakers (1992)
Dogfight (1991)
I Love You to Death (1990)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Little Nikita (1988)
A Night in the Life of Jimmy Reardon (1988)
Running on Empty (1988)
The Mosquito Coast (1986)
Stand by Me (1986)
Explorers (1985)


200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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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22:4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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