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리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했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살 곳이 모자라게 되자 지구에 제2의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외계인의 야욕 앞에서 지구의 운명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라 할 수 있을 이 긴박한 순간 외계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것은 바로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의 귀여운 다람쥐. 매일 푸딩을 하나씩 먹는 낙으로 살고, 홈쇼핑 카탈로그를 보는 것을 즐기며 냉장고에서 푸딩을 먹기 위해 지구인으로 변신하는, 외계에서 온 다람쥐의 막강한 귀여움 앞에 지구인 안경 총각은 그만 무릎을 꿇고 만다.
『동동구리』는 바로 도토리를 주식으로 하는 외계인 다람쥐의 지구 침략기(?)이다. 누가 봐도 귀여운 인형으로 착각할 만한 이 외계생명체와 갑작스레 동거하게 된 지구인 안경 총각의 좌충우돌 동거생활이 4컷 만화 구조로 펼쳐진다. 홈페이지에 올리던 웹툰을 단행본용으로 다시 그려 엮어낸 이 작품은 지구를 침략하러 왔다면서도 정작 푸딩 먹기에만 골몰하는 다람쥐와 난데없이 자신의 집에 얹혀살게 된 외계생명체를 내치지 않고 매일 그를 위한 푸딩을 하나씩 사가는 것을 잊지 않는 지구인의 따스한 교감을 편안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깔끔한 펜선이 아닌, 마치 부드러운 색연필로 쓱쓱 그린 듯한 동화 속 삽화 같은 그림체는 주인공 다람쥐의 귀여움을 극대화하는, 이 작품의 최대 강점이다.
사실 『동동구리』는 순발력 있게 치고 빠지는 센스 넘치는 코미디라기보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템포에서 반 박자 정도 뒤처진 듯한 느낌에 더 가깝다. 어쩌면 독자들이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동동구리』에서는 오히려 이런 느릿한 전개가 주인공 다람쥐의 성격과 어우러져 마치 적당히 늘어난 고무줄마냥 딱 그만큼의 느긋한 여유를 낳는 의외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다람쥐의 귀여움과 지구생활 적응기를 제외하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캐릭터나 사건 사고가 없기 때문인지 전체적인 작품의 흡입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다람쥐의 동거인 안경과 그의 회사 동료들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는 한번 보고 웃는 데는 아무 무리가 없지만 『동동구리』를 두고두고 찾게 만드는 매력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안경의 직장동료, 콘이나 타카미야 선배 등이 조금 엉뚱한 면모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포용 가능한, ‘평범’의 범주에서 5도 정도 엇나가 있을 뿐이어서 독자들의 허를 찌르고 뒷목을 잡게 하는 날카로운 유머는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데 그치지만 귀여움은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계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질리는 때가 오지만 귀여움은 그 형태도 변화무쌍하게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마음 한 구석을 공략한다. 『동동구리』의 다람쥐가 귀엽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람쥐의 귀여움을 능가할 만한 캐릭터나 스토리의 매력 포인트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귀여움만으로 지구를 정복할 수 없는 것처럼, 『동동구리』가 독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람쥐의 귀여움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2012. 5. misha.
*서브컬처웹진 프리카(http://prica.gameshot.net/)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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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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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연가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일본 만화나 영화, 드라마 등 일본 대중문화를 꾸준히 접해온 이들이라면 그 나라 특유의 지방색에 대해서도 쉬이 알게 되는 법이다. 자, 그럼 ‘교토’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떨까. 고도(古都), 옛스런 말씨,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대화, 관동/관서의 대비와는 또 다른, 교토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과 고풍스러움,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꼬장꼬장한 장인들의 세계. 3대 이상 장사를 하지 않으면 노포라고 말할 수 없다는 교토, 자기 가게의 노렌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그곳이 바로 『골목길 연가』의 무대다. 언뜻 보면 『후쿠야당 딸들』처럼 교토 상인들의 자부심을 중요하게 내세운 작품인가도 싶지만, 『골목길 연가』는 소소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보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자그마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조금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다.
첨단설비와 커다란 기계를 갖추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대량생산하는 곳이 아닌, 좁다란 골목길에 다닥다닥 이어 붙은 목조건물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료를 매만지고 다듬어가며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물건들에 정성과 보람을 가득 담고,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의 장식을 소중히 달아놓는다. 그리고 소리없이 찾아드는 사랑. 그것은 때로는 갑작스레, 때로는 오랜 시간 마치 공기처럼 주변에 머물며 상대방의 마음에 작은 잔물결을 만든 후 사라지고, 『골목길 연가』의 사람들은 잔잔히 퍼져만 가는 마음 속 설렘을 또 다시 조심스레 품어가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아소우 미코토 특유의 가느다란 펜선이 만들어내는 차분한 느낌은 마치 독자들이 교토의 구석진 골목 어딘가의 조용하고 한적한 공방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들게 한다. 젊은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작업실이 아니라 굳이 교토를 작품의 무대로 삼은 것은, 아마도 서두에서 언급한 교토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등에 업고 작품을 풀어나가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것이 비록 ‘선입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교토라는 지역 특유의 색채가 품고 있는 분위기와 장인정신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패기까지도 교토의 분위기에 녹아들게 만든다. 섣불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 표현한다는 교토 사람들처럼, 좁다란 골목길에 모여 사는 그들은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대신 직접 손으로 제본한 단 한 권의 책에,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은세공품에, 사랑하는 이를 위한 연작 그림에, 생활용품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아름다운 양초에 소중한 진심을 담아낸다.
사실 매회 풀어내는 이야기들 자체는 크게 신선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없던 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산고(産苦)를 자신의 일과 삶을 사랑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이겨내는 그 과정이 그들의 사랑과 맞물리는 순간을 작가는 세밀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순정만화에서 지극히 흔한 플롯을 가지고도 등장인물들의 출신지와 그 특성을 함께 결부시키면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나 할까.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펜선만큼이나 교토라는 지역, 교토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기왕이면 교토 사투리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지역 사투리로 적절히 바꾸어 번역해주었다면 『골목길 연가』가 지닌 장점을 더욱 극대화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뭐 아무려면 어떠랴. 이미 내 마음은 교토의 골목길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2012. 5. m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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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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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BL망상동화 3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BL이라는 장르만큼 독자들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장르가 또 있을까? 동성애라는 성적취향에 대한 호오는 일단 접어 두고서라도, BL은 동성애를 심도있게 파고드는 퀴어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가와 독자 모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상상의 세계관에 기초한다. 그렇기에 간혹 진중한 작품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BL은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다. 『세계 BL 망상동화 3』 역시 가벼운 BL코믹으로, BL 작가들의 세계명작동화를 패러디한 짤막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필자가 단골 만화방에서 오자키 미나미의 『절애/브론즈』와 『독점욕』을 해적판으로 숨죽여 보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일본에서 나온 BL동인지를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로 구입할 수 있는 날이 올 줄 어찌 알았으랴! [난쟁이와 구둣방], [눈의 여왕], [신데렐라], [은혜 갚은 학], [브레멘 음악대], [이나바의 흰 토끼] 등 총 6편의 작품이 실린 이번 앤솔로지는 아기자기한 SD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프트한 BL부터 수위높은 러브신이 난무하는, 폭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한다.
보통의 BL 만화가 아닌 『세계 BL 망상동화 3』과 같은 동인지, 앤솔로지를 읽을 때 특이한 점이라면 그야말로 작가가 ‘즐기면서’ 그린 느낌이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동화들이기에 작가들의 상상의 강도와 그로 인해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반동 효과 역시 더욱 커진다. 오리지널 BL이 아닌, 2차 창작물이 지니는 특유의 강점이라 할 수 있겠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어떻게 하면 좀더 끈적한 장면으로 연출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좀더 나른한 표정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오리지널의 세계관과 캐릭터의 성격 중 그에 필요한 부분만 골라 취하고 나머지는 미련없이 버린다. 세세한 설정이나 고증도 필요없다. 치밀한 짜임새?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화? 장대한 서사? 그런 것 없다. 명작동화가 전해주는 교훈적인 메시지 대신 오로지 러브신 한 장면을 위해 동화 속 요소요소를 쳐내고 비틀어대는가 하면 앞뒤 다 잘라먹고 일단 에로틱한 장면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상업지에 연재되는 것만큼의 치밀한 퀄리티를 기대한다면 이 책을 권하기 어렵다. 그저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우면 그만.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상상의 진폭이 크면 클수록 즐거움과 묘한 두근거림 또한 거세지기 마련이다. 폭주하는 머릿속 망상을 종이 위에 옮겨놓으며 입가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는 작가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즐거움은 더할 것이다.
다만 하나 우려하는 점이라면, BL을, 특히나 『세계 BL 망상동화 3』과 같은 동인물을 보고서 동성애의 전부로 오인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 BL이라는 장르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보고 실제 이반(異般 : 성적소수자)들의 삶과 고뇌, 사랑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불상사는 없길 바랄 뿐이다. 망상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알고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를 무기마냥 휘둘러대지 않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이라면 BL이라는 장르를 접한다 해서 그릇된 고정관념을 갖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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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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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목/태공망전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제괴지이>,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로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무면목/태공망전>은 지극히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작가만의 뛰어난 상상력과 역사의 재해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로호시 다이지로 특유의 기괴함과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역사적 기록이 빈약하면 빈약할수록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 발현될 여지 또한 많아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역사적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자칫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명명백백한 진실마저 윤색되거나 폄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작가가 후기에서도 밝혔듯 [무면목]의 경우 <장자>에 나오는 75자 남짓의 짧은 이야기, ‘혼돈의 죽음’을 소재로 한 무제 시절의 무고지화라는 역사적 사건을 함께 엮어내는데, 눈/코/입/귀 일곱 구멍을 뚫자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혼돈의 이야기가 무고지화라는 피비린내나는 사건과 치밀하게 맞물려 전개되면서도 <장자> 본연의 우화적 성격 역시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당대 현실의 문제점을 혼돈의 입을 빌려 지적함과 동시에, 외부의 말초적인 자극 대신 내부의 정형화되지 않은 혼란 그 자체마저도 존재의 본질로 인정하려는 철학적 메시지까지 함께 담아내는데 성공한 작가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뛰어난 스토리 텔링은, 그야말로 한편의 웰메이드 대하사극을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몰아치며 감상하는 느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꾸밈없고 담백한 그림체 또한 이 작품의 진가를 더욱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은허 유적에서 발굴된 거대한 왕의 무덤, 주지육림의 고사를 재현해낸 장면, 혼돈이 제 손으로 눈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 등은 박진감 넘치는 동세와 세련된 그림은 아니지만, 턱없이 과장되지도 미화되지도 않아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담담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자신이 뿌린 상상력의 씨앗이 자칫 독자들의 뇌리에 잘못된 열매를 맺을까 걱정하는 작가의 염려마저도 이 작품의 가치를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역사서에 단 몇 줄로 기술된 가느다란 씨줄과 날줄 사이 사이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가며 솜씨 좋게 짜낸 거대한 피륙 위에, 중국 역사 전반에 걸친 깊은 이해와 뛰어난 통찰력이 정교하게 수놓아졌을 때 과연 어떤 걸작이 나올 수 있는가를 이 단편집 한 권만으로도 작가는 확실히 증명해낸다. 무릇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진정한 팬이라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역사적 진실과 허구의 간극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져야 할 터. 한 권의 단편집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때로는 수십 권의 역사서와 철학서를 들춰봐야 하는 고행이 뒤따르게 될 지라도, 어쩌겠는가? 그것 또한 이 작품을 읽는 재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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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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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철공소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전문직’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지금까지 만화 속에서 흔히 등장하곤 했던 전문 직업군을 하나 둘 떠올려 보자. 요리사, 언론사 기자, 소믈리에, 탐정, 디자이너, 파티셰, 소방관, 경찰관, 무용수….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마음 속으로 동경했을 법한 꿈의 세계. 비록 작품 속 주인공들이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라며 울먹거리면서도 결국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에 눈자위 한번 쓱 훔치고 다시 제자리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것처럼, 만화 속 전문직 종사자들의 세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나도 한번’이라며 호기심에서라도 그 일을 해보고픈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자,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야근에 휴일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한겨울에도 얼굴 피부가 그을려 껍질이 벗겨진다. 뜨거운 쇳물이 튀어 화상을 입는 것은 일상다반사, 심지어 눈알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기도 한다. 게다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고 철사 조각이 튀어 한쪽 눈이 실명하는 일까지.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영웅담도 아니고, 대체 어떤 직업이기에 이런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일까?
<말랑말랑 철공소>는 바로 이런 위험천만한 용접공의 세계를 다룬 만화다. 쇳덩이 앞에서 뜨거운 불꽃을 튀겨가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의 애환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뚝뚝 묻어난다. 블루칼라 직업군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을 용접공, <말랑말랑 철공소>의 세계는 실제 그 일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을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작업장에서 내 한 몸의 안전보다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일에 매진하는, 산재처리는커녕 건강검진만이라도 받게 해주면 좋겠다는 그들의 자조섞인 독백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작가 노무라 무네히로는 실제 용접공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용접공의 일상의 단편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특별한 기승전결의 포맷 없이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온 리얼리티는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쇳덩이의 무게 그 이상으로 독자들의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담당기자의 코멘트라는 형식을 빌린 글귀가 매 책장 여백에 두세 줄씩 적혀 있다는 것이다. 생전 자기 밥그릇보다 무거운 것은 들어보지 않은 것 같은 부잣집 아가씨라는 컨셉트로 언뜻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만, 해당 에피소드와 얼추 내용이 맞물리고 대비되며 용접공들이 겪는 삶의 피로와 보람, 기쁨을 더욱 강조하는 기묘한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우리의 머릿속에 은연중에 박혀있는 블루칼라에 대한, 힘들다, 고생스럽다,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이 작품은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선입견을 더욱 굳히는 에피소드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작품 속 용접공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다.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고 꺼려하는 그 일로, 수십 년 동안 그들은 자식을 키우며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그들의 아내와 딸은 아무 말 없이 작업복을 빨아 수선하고 도시락을 싸면서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 없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투박한 그림체에 감정표현 또한 그리 섬세한 것도 아닌데, 내 자신과 가족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일에 매진하는 이들의 삶은 작업의 귀천을 넘어서 고귀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무리하게 웃기지도 않고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위험하고 고된 일을 애써 그럴 듯 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용접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썩 좋지 않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오히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용접공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 정도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읽는 이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은, 그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다.’라는, 모든 직업이 가지는 동등한 가치. 그것이야말로 <말랑말랑 철공소>가 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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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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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클론의 눈물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기억이란 무엇일까. 얼굴이 비슷한 사람,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 성격이 비슷한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기억까지 비슷한 사람은 없다. ‘나’를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기억은 그 힘을 얻고, 때로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가 하면 때로는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똑같은 케이크를 먹는다 해도,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케이크의 맛을 똑같은 정도로 기억할 수는 없다. 10년 전의 일도 계속 머릿속에서 되새김질 되며 매 순간 달라지는, 한없이 오래되었으면서도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복제인간, 클론을 다루는 SF 작품에서 클론의 ‘기억’은 항상 윤리적/도덕적 관점에서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는 동시에 작품 속 갈등의 주원인이 되곤 한다. 같은 얼굴과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해서 과연 그를 유전자를 제공한 오리지널과 동일시할 수 있는가? <메리클론의 눈물』의 주인공 루이는 아예 기억까지 몽땅 카피해낸 ‘메리클론’을 내세움으로써 클론을 원하는 이들에게 최후의 칼자루를 쥐여준다.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 미래를 향해 끝없이 달려나가기를 원하는 자, 과거의 아픔과 자신의 과오를 모두 끌어안고서 현재에 발을 붙이려는 자, 그들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고 그들은 결국 저마다의 이유로 메리클론을 선택하거나 혹은 외면한다.
기억을 인정해줌과 동시에 기억을 부정한다. 그것이 바로 메리클론이다. 기억까지 동일한 메리클론은 오리지널의 존재가치를 그대로 이어받고자 하지만, 실상은 본체를 카피해낸 그 시점에서부터 얼마든지 오리지널을 대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본체로 자리함으로써 클론과 본체의 차이를 없애버리고 결국 모두를 도구화해버리고 만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내 이름을 속삭이던 그 목소리는 과연 내가 직접 겪은 것인가, 아니면 메리클론인 나에게 복제된 본체의 기억인가? 메리클론 스스로는 그 괴리감을 느낄 여지도 없이 울고 웃으며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나나코는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계속해서 메리클론을 만들어내는 루이를 제지하지 못한다.
주인공의 허무를 나타내기에 손색없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체에 비해 흡입력이 다소 부족한 스토리는 못내 아쉽지만, 카즈미 유아나의 몽환적인 그림만큼이나 루이를 둘러싼 의문과 비밀은 대부분 안개 속에 싸인 채 나나코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메리클론을 만들어내는 루이를 마치 신들린 듯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메리클론의 눈물』은 메리클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학적 기술이나 묘사는 과감히 포기한 채 오직 ‘기억’이라는 정신적 영역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국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고, 신의 영역을 탐한 대가가 파멸과 죽음으로 귀결됨은 신화 속에서,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 온 자명한 진리이다. 육체는 오리지널의 체세포를 이용해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기억은 결국 그대로 ‘복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 신(神), 혹은 구원자를 자처하지만 결국 인간에 불과한 루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사실은 작품 속 그 누구보다도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루이가 과연 시간이 주는 망각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2012. 4. 20.
*서브컬처웹진 프리카(http://prica.gameshot.net/) 기고문입니다. '창고 > 만화, 나의 오아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04/2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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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사랑이잖아?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어릴 적 아버지로 인한 상처 때문에 남자혐오증이 생겨버린 히메모리 이치노. 다재다능하고 친구, 선배들 사이에서도 항상 의지할 수 있고 믿음직한 그녀는 진학하게 된 고등학교가 갑자기 남녀공학으로 바뀌게 되면서 난관에 부닥친다. 이제껏 여학교만 다닌 이치노와 여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남학생들과의 공동생활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데….
우연이 세 번 계속되면 운명이 아니겠느냐는 아라타의 말은 언뜻 보면 당연한 듯 들리지만, 안타깝게도 『뭐랄까, 사랑이잖아?』는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설득력보다는 우연의 힘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갑작스레 남녀공학이 되었다고 해도 남학생들과 여학생들간의 심리적 대치상태는 다분히 인위적이고, 십 수년간 굳어온 남자혐오증을 이치노가 조금씩 극복하고 아라타와 같은 반 남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서서히 부드러워지는 과정 역시 지나치게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스토리의 진행상 억지로 끼워 맞춰진 듯한 느낌이 강하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책임감과 그 나이 또래치고 꽤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는 이치노의 성격이라면 애초부터 작품 초반에 묘사되는 바와 같은 심각한 남자혐오증으로 치달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우수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모를 상처와 아픈 추억을 품고 있는 캐릭터라는 설정은 좋지만, 이치노의 성격과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언행을 묘사하는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합일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치노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별반 부각되지 못한다.
여장을 하고서야 이치노의 속내를 들을 수 있기에 계속 ‘시노’라는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타나는 아라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스스로 여장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아라타가 여장을 거듭하는 이유 역시 아직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남자면서도 여자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 : 반대 성의 옷을 입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아라타가 어떤 연유로 여장을 시작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계속하는지가 자연스럽게 그려지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더 이상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결국은 이치노는 남자혐오증을 완전히 극복하고, 아라타 역시 ‘시노’가 아닌 다나카 아라타 그 자신으로 이치노 앞에 서서 연정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그저 두 캐릭터의 갈등의 골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 선택한 소도구처럼 쓰이는 심리적 요소들이 실은 그리 녹록한 것들은 아니다. 기왕이면 좀더 세심한 배려와 고심 끝에 접근하고 다각적으로 풀어내어 더욱 풍부하게 캐릭터를 묘사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치노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라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이치노 앞에 다가서는 과정만큼은 두 사람의 해피엔딩에 묻혀 가볍게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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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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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 라비린스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TV를 틀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연예인을 한 지붕 아래에서 매일 마주하게 되는 기분은 어떨까? 오기와라 우미의 오빠 하루토는 최근 뜨고 있는 신예 탤런트로, 우미의 자랑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여느 집 남매들처럼 툭탁대기 일쑤지만 자상하고 상냥한 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는 우미는 어느 날 우연히 촬영장에서 하루토가 러브신을 연기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우미가 하루토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잘난 오빠를 향해 평범한 여동생이 품을 법한 동경만은 아니다. 누구 앞에서든 ‘우리 오빠예요!’라고 자랑스레 얘기하고픈 마음, 한동안 얼굴을 안 본다고 해서 멀어질 사이가 아닌, 혈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관계에서 오는 묘한 안도감은 아슬아슬 외줄을 타는 것마냥 위태로움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빠를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은 소유욕을 사이좋은 남매간의 유별난 우애라고 간단히 치부하기엔 심상치 않음을 우미도, 하루토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한 지붕 아래 금단의 사랑’이라는 소재는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긴 하지만, 『순애 라비린스』는 여기에 연예인이라는 설정까지 덧붙여 10대 여성 독자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제목 그대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10대 소녀가 처음으로 사랑 비슷한 감정(순애 純愛 :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 대상이 함께 자라온 오빠이기에, 혼란(라비린스 Labyrinth : 미로, 미궁)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오빠 역시 여동생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잠시, 심장고동은 제멋대로 빨라지고 두 뺨은 붉게 달아오르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마음의 방어벽이 허물어진다. 나도 모르게 힘주어 맞잡게 되는 손,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닿게 되는 입술. 금단의 열매가 주는 달콤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없이 유혹적인 법이니, 결국 그 과실을 따먹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리라.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열매를 손에 쥐게 되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얼마나 쥐락펴락 감질나게 이어나가는가 하는 것. 가족들 중 자신만이 피가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하루토와, 아무런 의심도 않고 당연히 하루토를 친오빠로 알고 있는 우미, 그리고 그 사이에 레이라가 끼어들며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삼각관계로 빠져든다.
출생의 비밀과 금단의 사랑, 감정의 방어벽을 넘어서는 격류와도 같은 마음. 때와 장소에서 조금씩 변주가 이루어질 뿐 『순애 라비린스』는 독자들이 이미 수없이 접해온 통속적인 요소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적절한 순간에 등장하는 새 캐릭터와 친절하게 깔아놓는 익숙한 복선들은 뻔한 클리셰의 나열이지만 뒷이야기가 어찌 될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순애 라비린스』는 소재는 자극적이되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전혀 어렵지 않다. 감정의 미궁에서 헤매는 것은 우미와 하루토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고민 않고 감자칩 한 봉지를 털어먹으며 느긋하게 그들을 지켜본 후 부담없이 책장을 덮으면 그만이다.
201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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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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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발랄 시화관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여기저기 둘러봐도 아파트가 넘쳐나고 그것도 모자라 나날이 새로운 아파트들을 계속 짓느라 부산스럽건만, 어찌된 일인지 내 한 몸 편히 뉘일 곳 찾기가 힘든 요즘이다. 하물며 부모님 없이 혈혈단신, 당장 오늘 먹을 끼니 하나 제대로 해결하기도 암담한 스무 살 여대생이야 오죽할까. 『생기발랄 시화관』의 신영이 바로 그러한데,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아르바이트 비도 떼이고 월셋방에서도 쫓겨나 막막하기 그지없던 그녀였지만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는 법. 난데없이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던 조부가 유산으로 집 한 채를 남겼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나 알고 보니 유산으로 받은 집은 바로 이세계와 연결된 통로, 솥단지가 있는 시화관이었던 것이다. 시작은 암울한 청년실업, 극빈층의 현실을 고발하는가 싶더니, 시화관 그 자체이자 집의 정령이라고 할 수 있는 라한, 그리고 그와 함께 주인을 보필하는 시종 토끼 월과 토까지 끼어들며 신영의 일상은 당장 오늘 내일 잘 곳을 걱정하던 비참한 현실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판타지로 단숨에 워프하게 된다.
주인공이 이세계로 건너가는 대신 이제껏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존재들이 도리어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시화관에 존재하는 이세계와 이어지는 차원의 통로, 솥단지는 상상의 한계를 넘나드는 문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각기 다른 소망을 품고 시화관을 찾고, 신영은 라한과의 계약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솥단지를 통해 드나드는 여행객들을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는다.
즉, 이계의 존재들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 뚝, 하고 떨어져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들을 어떻게 하면 신영이 그럭저럭 잘 수습해서 넘길 수 있느냐가 이 작품의 큰 뼈대이다. 그러나 생계유지에 급급한 짠순이 여대생 신영의 매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소 불안한 부분이다.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 이야기의 주축이 되어 주도적으로 서브 캐릭터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역할인데, 신영의 성격 등을 그려내는데 단순히 원망과 짜증, 신경질 같은 지극히 표면적인 묘사로만 그쳐버린 까닭에 독자들이 쉽게 그녀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작가가 이미 『반혼사』를 통해 동양적인 정취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어낸 바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고풍스런 동양적 판타지가 아닐까 하고 내심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 차원의 한계를 넘나드는 솥단지는 독자들이 은연중에 품고 있던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을 날려버리게 만든다. 마치 조선 시대 양반집 규수가 금발의 소녀를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탄탄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판타지가 아닌, 차원을 이동하는 존재들이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지금의 방식은 스토리 진행과 캐릭터 구축에 있어 자연스러움과 설득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식으로 끝나버릴 위험도 크다.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가는가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무작정 뻗어나가는 상상의 잔가지들을 쳐낼 것은 쳐내고 살릴 것은 살려서 더 나은 방향으로 키워내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좀더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노련하게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주인공과 작가의 연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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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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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여기, 두 남녀가 있다. 처음에는 그리 썩 좋은 관계로 시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쁜 인상만 서로에게 심어주고 말았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미묘해진다. 우정인가? 의리인가? 사랑인가? 간간이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드는 방해꾼 내지는 라이벌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도 하고….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수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극히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끊이지 않을 이야기들. 혹은 많은 여성들의 로망.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긴장되는, 그렇지만 당장 내 눈 앞의 현실이 아니기에 마음껏 여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서 호들갑을 떨 수도 있고 밤새 두근거리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수도 있는, 이것이야말로 로맨틱 코미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결국은 저 둘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되겠지, 하며 결말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계속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그 묘한 중독성이란!
어릴 때 교통사고로 눈을 다친 이후 환영을 보게 된 하영. 어릴 적부터 줄기차게 나타나는 꽃미남들의 환영 덕분에 작품의 모티브를 얻게 되고, 잘 나가는 BL 전문 만화가가 되어 남부러울 것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하영은 병원에서 새 작품의 주인공에 딱 어울릴 만한 남자 환영을 보게 되지만, 그는 환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신경과 레지던트 엄친아 신지한이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산삼보다도 귀하다는 동인남이었던 것! 그것도 BL계에서 이름난 동인작가 ‘딸기조아’였던 것이다. 지한을 환영으로만 생각하고 이런저런 온갖 실수를 면전에서 다 저지른 탓에 하영은 지한에게 꼬투리를 잡히게 되지만 결국 둘은 함께 작품을 하게 되고, 정이 많은 성격의 하영과 까칠하고 입 험한 지한은 아옹다옹 다투며 정을 쌓아가게 된다. 환영을 보는 이와 정신과 의사의 만남에 BL 전문 만화가와 동인작가의 만남이라는 디테일까지 더해지니, 이것이야말로 순정만화에서만 가능한 참신한 설정이라 하겠다.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순정만화 중에서도 BL과 로맨틱 코미디는 그들만의 판타지이자 욕구를 대리 충족시킬 수 있는 주된 장르이다. 『보이나요?』는 충분히 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초를 닦아놓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이나요?』의 스토리 진행은 지극히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틀 속에 갇혀 있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일을 시작하며 부대끼게 되는 두 남녀,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새롭게 끼어드는 인물의 등장과 그로 인해 다소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은근슬쩍 여주인공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남주인공,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희미한 호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을 쉬이 예측할 수 있다는 것. 2권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탄탄한 서사구조나 복잡다단한 갈등 대신 가볍게 치고 빠지는 이야기 위주로 작품을 끌고 나가는 것은 아직 작품 초반이라 그렇다 해도, 모처럼의 참신한 설정이 단순한 배경에만 그칠 뿐 이 작품만의 매력을 쌓아 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게다가 BL이나 동인계 용어 등을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BL을 그리 즐기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별반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단점이겠다.
뻔하다면 뻔한 것이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 흔한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주인공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사랑의 난관을 함께 넘어가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호오가 갈라질 것이다. 기왕의 참신한 설정이 하영과 지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 것인지, 아직 작가가 풀어놓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결국 그저 그런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로 끝날 것인가, 이제 슬슬 시동을 걸어 저력을 보여줄 것인가. 분명한 것은, 2권까지 이야기가 진행된 이상 지금까지처럼 소모성 에피소드로는 하영과 지한의 관계는 물론이고 독자들의 관심 또한 상승세를 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서브컬처웹진 프리카(http://prica.gameshot.net/) 기고문입니다 2012/04/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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