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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보로미르와 파라미르 
2005/11/26   비고 몰텐센(Viggo Mortensen)-빠져들지 않을 수 없어 
2005/11/26   아라곤에 대해서 
2005/11/26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내 기억 속에서나마 편히 쉬기를 
2005/11/26   카일 맥라클란(Kyle MacLachlan)-처음으로 빠져들다 
게리 올드만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예전에 소루 님이 쓰셨던 [폭력의 역사] 리뷰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비고는 자신이 모르는 인물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인물을 자기 고유의 모습으로 구현하려고 한다.’ 소루 님 못지않은 비고 빠로서 나 역시 그 말에 적극 공감한다. 이 사람은 어떤 역을 연기해도 ‘비고 모텐슨’ 배우 본연의 이미지가 깔려 있달까…. TV 시리즈를 제외하고 적어도 국내에서 구해볼 수 있는 비고 씨 출연작은 어지간히 챙겨봤다고 생각하는데, 그 작품들 속에서 비고 씨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어딘가 모르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역할을 제대로 이해/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소루 님이 얘기하신 그대로 ‘비고가 연기하는 인물은 비고’ 이 말이 딱 정답인 듯. [G.I.제인]의 존과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과 [퍼펙트 머더]의 데이빗과 [프로페시]의 루시퍼와 [데이라잇]의 로이(후…;;)를 돌이켜보라. 이건 비고 씨의 외모적 특징에서 어느 정도 기인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연기하면서 지향하고자 하는 지점이 그런 부분에 있는 것 같다. 분명 영화 속 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음에도 그는 ‘비고 모텐슨’이라는 배우의 자아 역시 지니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비고 모텐슨이라는 사람 안에 그렇게나 많은 페르소나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 완벽히 파악한 연후에 또 다시 자신만의 색채를 덧씌움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느낌, 영화 속 인물과 비고 모텐슨이라는 실존인물이 융합되면서 일어나는 기묘한 화학변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 비고가 연기하는 스타일과 좀 상반되는 입장의, 즉 배우 자신의 이미지를 종처럼 찾기 힘든 경우는 또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내 경우 딱 생각나는 인물은 바로 게리 올드만이다. 게리 올드만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반 없는 상태에서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과 [레옹]의 부패경찰 스탠필드가 같은 배우라고 했을 때 단박에 ‘아, 그렇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생각하는 게리 올드만은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캐릭터에 올인하는 스타일의 배우다. 비고 모텐슨과 나란히 놓고 봐도 그가 갖고 있는 존재감이 오히려 나았으면 나았지 절대 못하지는 않고, 배우 자신의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오히려 지나치게 개성적이라면 개성적이랄까) 신기하게도 나는 게리 올드만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곤 한다.  








조각같은 미남인가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미중년인 게리 올드만 씨


워낙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니만큼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실력이야 100% 보장하지만 역시 게리 올드만은 악역을 맡았을 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렬함이 무엇보다 돋보인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깊이를 알 수 없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깊다’를 강조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알 수 없다’라는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싶다). [트루 로맨스], [레옹], [일급살인]에서의 게리 올드만을 떠올려보라. 철저한 악역이라기보다는 좀더 종잡을 수 없고 복잡다단한 악역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한다는 점에서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가 선(善)보다는 악역의 이미지에 좀 더 걸맞다는 것도 인정한다([배트맨 비긴즈]에서 게리 올드만이 ‘착한’ 역이고 ‘죽지도 않는다.’고 지인들에게 누차 얘기했건만 결국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_-). 그러나 그런 배우가 [드라큐라]에서는 드라큐라이고 [주홍글씨]에서는 아서 딤즈데일이고 [배트맨]에서는 고든이란 거다. 아서 딤즈데일과 고든의 얼굴에서 게리 올드만이 연기했던 악역들의 그림자를, 아니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의 느낌을 찾아낼 수 있는가?(난 전혀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컷을 죽 나열해봐도 분명 ‘닮은 얼굴’이기는 하지만 조금의 공통점도 찾아낼 수가 없다. 팬심의 차이인가? 글쎄, 그건 아니라고 본다. 배우 자체의 존재감을 죽이고 캐릭터에 전부를 바치면서도 역시나 능수능란하게 얄미울 정도로 완급을 조절한다. 나름 비중있는 조연이기는 했지만 결국 주연은 아닌 상황에서 그가 크리스찬 베일 앞에서 철저히 그 자신을 낮추었던 것처럼.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가 지닌 그릇과 고든이라는 영화 속 인물이 지닌 그릇 중 그는 철저히 고든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거기 존재하는 것은 그저 고든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몰입하게 되는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바로 그 부분이다. 처음엔 분명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영화 속 그가 연기한 특정 인물의 이미지만이 남아 있고 그 이미지들은 각각 별개의 기억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간다.

비고 모텐슨과 게리 올드만이 출연하는 영화를 단지 그들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도 보러가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비고 모텐슨의 경우 그가 만들어내는 그만의 캐릭터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고, 게리 올드만의 경우 그가 몰입하는 영화 속 등장인물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그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다.

결론→[이스턴 프라미스] 보러가고 싶었는데 결국 공쳤다. OTL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역시 비고 빠;




미중년, 비고 모텐슨

2008/12/23 11:01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8
보로미르와 파라미르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주의: 이 글에서는 영화에서의 보로미르와 파라미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두개의 탑]이 개봉하기 전 『LotR』 팬들 사이에서 무수히 떠돌았던 소문 중 하나는, ‘파라미르가 숨넘어갈 정도로 멋있다더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속에서 올리폰트를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 위대한 곤도르의 섭정의 차남께서는, 그간 한껏 부풀어 있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원작과는 사뭇 다르게 묘사되는 파라미르에 실망하신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섭정 데네소르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그의 광기는 과연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간달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데네소르는 여느 현자 못지 않은 현명함과 통찰력과 위엄을 지녔고, 대대로 곤도르의 섭정을 지내온 고귀한 가문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왕이 없는 곤도르를 대신 통치하며 왕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대신 그 어깨에 지고, 사우론에 대항하며 백성들을―인간들의 생명을 수호해야만 했고 또 그렇게 해온 인물이죠. 이제 신화와 전설 속에 묻혀서 옛 문헌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실두르의 후예, 자신의 백성들이 죽음과 파멸의 위협에 처해 있는데도 나타날 생각도 않는 왕에 대한 분노는 곧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독점욕으로 이어집니다. 왕 못지 않은 통치력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고 그런 능력도, 권한을 행할 충분한 의사도 있지만 자신의 자리는 높은 단 위의 왕좌가 아닌 바닥에 놓여진 섭정의 의자. 뒤늦게야 나타나 왕권을 주장하는 아라곤에게 ‘어서 오십시오, 기다렸나이다.’라고 말하며 순순히 그 앞에 허리를 굽힐 리는 없지요. 오히려 그에 맞서 오랜 기간 곤도르를 통치해 온 섭정 가문의 권리를 내세우며 스스로 왕권을 주장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그럼 보로미르와 파라미르는 어떨까요? 두 형제는 아주 닮았으면서도 아주 다른 형제입니다. 용맹함과 무용, 곤도르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둘 다 같습니다. 하지만 호전적이고 호쾌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는 추진력의 소유자인 보로미르에 비해 파라미르는 온화하고 보다 지혜로우며, 말을 아끼고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보로미르는 그 카리스마와 지략에 있어서 왕의 자리에 적합하고, 세심하고 주의깊은 파라미르는 섭정의 자리가 더 어울릴 만한 사람이죠. 데네소르가 그렇게나 장남 보로미르를 끔찍하게 아낀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가문의 후손들이 앉아야 할 곤도르의 왕좌, 그 기틀을 닦아놓고 또 오를 수 있는 것은 보로미르라고 생각한 거죠. 리븐델에서 엘론드의 주관으로 열린 회의에서의 보로미르의 태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곤도르에는 왕은 필요없다.’ 자신의 눈앞에 무릎꿇고 충성을 맹세해야 할 왕이 서 있는데도 보로미르는 그 한 마디를 쓰게 내뱉습니다. 사우론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고 오랜 세월 방랑해야만 했던 아라곤의 고뇌만큼이나, 왕 대신 곤도르를 지켜온 섭정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 고통을 이어받아야 할 보로미르. 아라곤과 보로미르의 관계는 처음 시작부터 결코 순조롭게 풀어갈 수만은 없는 관계입니다.

한순간은 반지를 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절대반지는 소유할 수 없고 소유해서도 안 되는 것임을 깨달은 보로미르는 반지의 유혹 앞에 굴복해버린 스스로의 나약함과 프로도에 대한 미안함, 그에게 구할 용서를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 갚습니다. 수십 명의 오크에 둘러싸여, 십여 대의 화살에 몸이 꿰뚫린 채로 메리와 피핀을 끝까지 감싸는 보로미르. 비록 아버지 데네소르는 호빗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보로미르의 최후에 분노를 느꼈겠지만, 보로미르의 죽음은 『LotR』 전편에 있어서 가장 정의롭고 숭고한 죽음입니다. 누구나 반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반지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곤도르를, 곤도르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는 보로미르였기에 그는 절대반지를 더더욱 갈구할 수밖에 없었지요. 보로미르는 절대반지의 힘과 그것이 불러오는 마음의 어둠을 맛보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고 결국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릅니다.

한편 파라미르는 형 보로미르를 무척이나 따르고 보로미르 역시 동생을 지극히 아낍니다. 보로미르에게 있어 파라미르는 전장에서 안심하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이자 둘도 없는 혈육이지요. 파라미르에게 있어서도 보로미르는 늘 믿음직한 선봉장이자 언젠가 곤도르를 구원할, 자신이 평생 받들 섭정이 될 인물입니다. 굳은 신뢰와 사랑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영화에서 그토록 닮아보이는 것은 단지 분장 덕분만은 아닐 겁니다. 파라미르에게 모진 소리를 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보로미르와 그런 두 사람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파라미르의 눈빛은 같은 슬픔을 담고 있지요. 위태롭기만 한 곤도르의 앞날, 막다른 곳으로 치달아만 가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와 연민,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기대와 독점욕으로 가득 찬 부성애에 대한 반발과 그런 어긋난 사랑이라 해도 단 한순간이나마 인정받고 싶은 바람과 아쉬움. 그래서일까요. 오스길리아스에 휘날리는 곤도르의 성수깃발을 바라보는 보로미르의 눈빛, 그런 형을 말없이 바라보며 떠나보내는 파라미르의 눈빛은 한없이 젖어 있습니다. 늘 함께 있었지만 결국은 영원한 헤어짐을 예감하는 것처럼요.

형처럼 반지를 탐하기 이전에 형의 과오를 먼저 깨닫고 프로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원작에서의 파라미르와는 달리 영화 속의 파라미르는 보로미르가 반지를 바라보았던 그 눈길로 프로도와 반지를 바라봅니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는 말까지 하지요. 아마 이 장면에서 파라미르를 총애하는 많은 분들이 순간 뒷골이 따끈해지셨을 겁니다. 하지만 전 그 장면이 원작의 팬들과 영화가 타협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사실 원작의 파라미르는 어떻게 보면 아라곤보다도 더 훌륭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거든요. 간달프가 팔란티르를 아직은 사용할 때가 아니라고 충고하자 ‘그만큼 인내해 온 내가 아직도 부족합니까.’라고 반문하던 아라곤을 떠올려 보세요. 원작의 아라곤은 자신의 혈통과 권위에 대한 확신, 왕좌로 돌아가야 한다는 굳은 의지로 그 긴 세월을 버텨오지만 영화에서의 아라곤은 끊임없는 회의와 속죄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위대한 두네다인임에는 틀림없지만 책에서처럼 신성성이 강조되지는 않지요. ‘격하되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21세기의 우리들이 보는 영화에서는 신화와 전설의 무게로 관객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파라미르 역시 같은 이치입니다. 원작의 파라미르는 영화의 아라곤과 상통하는 면이 무척이나 많거든요. 신중하고 사려깊고 책임감 강하고 두네다인의 혈통 못지 않은 고귀한 인간. 한 영화에 비슷한 캐릭터가 비슷한 성격으로 다루어진다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겠지요. 아버지에게 그토록 홀대받으면서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으로 내몰린 파라미르가 절대반지를 본 순간 곤도르로 갖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고 해서 그를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절대반지만 있다면 그간 자신을 아들이 아닌 한낱 부하로 냉정하게만 바라보던 아버지에게서 한 번쯤은 따스한 말을 들을지도 모르고, ‘아들아’라고 불러주며 보듬어 안아 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저 아버지에게 남이 아닌 ‘아들’로 인정받고 싶은 소박하고도 절박한 바람에서 비롯된 욕망입니다.

T_T그러나 파라미르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프로도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접습니다. 잠깐 동안의 실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로미르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며 믿음과 격려로 미안함을 대신합니다. 잘못과 뉘우침, 그리고 속죄. 우리가 늘 반복하는 일들이죠. 아라곤이 원작보다 영화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것만큼 파라미르 역시 세속적인 감정이 부여된 새로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성인군자 뺨칠 정도로 훌륭한 인격자인 원작의 파라미르는 아니라 해도,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그토록 갈망하는 영화에서의 파라미르를 보고 있자면 그의 슬픔과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섭정과 신하의 대화를 나누는 데네소르와 파라미르. 아들은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말을 달리고, 아버지는 피핀의 구슬픈 노래를 들으며 앞에 놓인 요리를 우적우적 씹습니다. 비록 러닝타임 때문에 영화에서 얄팍하게 묘사된 데네소르에 많이 실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참 많이 슬펐습니다. 결코 좁혀지지 않는 그들의 거리, 그들이 결코 공유하지 못한 그 어떤 것, 더 이상은 아무것도 기대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절망…. 파라미르의 말발굽 소리가 들릴 때마다 땅에 패일 그 자국이 마치 가슴에 찍히는 것 같아서, 피핀의 가냘픈 목소리에 실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피핀과 같이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 파라미르가 감내해야만 했던만큼은 아니라 해도, 처연한 그의 얼굴은 두고두고 무거운 돌처럼 가슴안에 자리잡을 것만 같습니다.

극장에서 상영하기 위한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에 구애받는 것은 제작진과 관객 모두 어느 정도 선에 이르면 스스로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캐릭터의 성격과 그 비중에 다소 변화가 있었고 그 때문에 분노하는 이들도, 오히려 환호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영화의 보로미르와 파라미르는(출연시간과 영화 전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떠나서) 정말로 실존했던 인물처럼 되살아났습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확장판에서나마 두 형제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죽을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맥주잔을 부딪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되살아난 성수가 심어진 백색탑에 늘 함께 머물 것입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나 바랬던 평화로운 Middle-Earth, 그토록이나 기다렸던 그들의 진정한 왕이 다스리는 곤도르에 말입니다.


200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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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23:18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비고 몰텐센(Viggo Mortensen)-빠져들지 않을 수 없어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1998년도던가요. TV에서 해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G.I.제인G.I.Jane]의 데미 무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영혼Ghost]에서의 몰리, [세븐 사인The Seventh Sign]에서의 애비 퀸,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의 헤스터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있던 제게 있어 머리를 삭발하고 정글에서 뒹구는 데미 무어의 모습은 참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런데 웬일입니까. 분명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데미 무어였습니다. 그다지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밉살스럽다고 말하는 교관 잭, 저는 그 사람이 이상하게도 참 좋아보이는 겁니다. 야간훈련 때 조던의 손을 놓아버린 코테즈에게 삽을 던지며 ‘전우라는 단어를 먼저 배워라.’라고 나직하게 경고하는 교관 잭. 생존훈련에서 가차없이 조던을 폭행하다 결국 훈련을 통과하고 자신에게 욕지기를 내뱉는 조던을 바라보는 잭의 시선. 상점에서 물건을 사갖고 나가는 조던을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보던 잭의 눈빛…. 네, 한 마디로 ‘필이 꽂혔다.’라는 거겠죠. 분명 가혹하고 냉정한 교관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사려깊은 사람. ‘비고 몰텐센’이라는 배우의 첫 이미지는 그랬습니다.

우연일까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의 웹스 역시 잭의 이미지와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진 해크만과 댄젤 워싱턴 사이에서 핵미사일의 발사키를 쥐고서 고뇌하는 그의 모습 역시 군인으로서 따라야 할 명령체계와 인간으로서 따라야 할 도리 사이에서 중도(中道)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죠. 친구 댄젤 워싱턴에게 보여주던 따스하고도 유머러스한, 한편으로는 잠수함의 계기판의 붉은 불빛 아래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고심하던 모습. 과격한 행동이나 급진적인 결단을 내리지는 않지만 신중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깊게, 인상이 남았습니다.

비고 몰텐센이 연기한 대부분의 인물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것이죠. 위의 [G.I.제인]이나 [크림슨 타이드]는 물론이고 기네스 팰트로,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나온 [퍼펙트 머더A Perfect Murder]에서도 그랬습니다. 기네스 팰트로와 마이클 더글러스 둘 모두를 속이고 사기를 치면서도 데이빗(비고 몰텐센)은 기네스 팰트로의 사진을 간직합니다(결국은 어이없이 칼 맞고 죽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위험한 매력, 하지만 어딘가 숨어있는 순수함과 천진함. 이런 이미지는 [베일 속의 카이로Ruby Cairo]에서도 비슷합니다. 아내 앤디 맥도웰에게까지 자신이 죽었다고 믿게 한 다음 대규모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자신이 벌여놓은 사기극의 덫에 걸려 역시 총을 맞게 되지만요. -_- 남편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게 된 앤디 맥도웰은 그를 원망하지만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합니다. 남편의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 영화들과 함께 못 말리는 알코올 중독자로 나오는 [28일간28Days],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의기양양하게 나섰다가 어이없이 죽는 [데이라잇Daylight](정말 어이없습니다. 비고 몰텐센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보시려는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총격전에 휘말려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데다 마약중독에 빠지는 랄린 역을 연기한 [칼리토Calito's Way] 등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참으로 가지각색입니다. 하지만 비고 몰텐센을 통해 표현되는 캐릭터는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왠지 시선이 머물게 되는 사람, 그러다 결국 마음을 뺏기고 마는 사람입니다([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Lady]에서 왜 니콜 키드먼이 비고 씨를 뿌리쳤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요-_-). 비록 그 비중은 작지만 영화의 전개에서 중요한 고비를 담당하는 역할이죠. 주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인력의 소유자. 그런 이미지가 비고 몰텐센이라는 배우가 원래 지닌 인간적인 면모인지, 아니면 그런 캐릭터를 잘 연기해 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역할을 맡든 간에 그 캐릭터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라는 것입니다. [위트니스Witness]에서 대사 몇 마디 없던 젊은 농부로 영화에 데뷔했던 그때는 해리슨 포드의 옆의 옆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비록 잠시 스쳐 가는 조역에 불과했지만 그는 차곡차곡 영화의 무게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LotR』에서 아라곤이라는 메인 캐릭터를 맡아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요. 원작에서 이실두르의 후계자이자 곤도르의 왕인 고귀하고도 자신감으로 가득 찬 아라곤 텔콘타르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섬세하지만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경계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들의 왕으로 거듭나는 아라곤은 비고 몰텐센이라는 배우에 의해 완벽하게 스크린 속에서 현실화되었습니다. 비고 몰텐센이라는 배우와 영화 속 아라곤이라는 캐릭터는 마치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비고 몰텐센은 화가이자 사진작가, 시인으로도 이름이 꽤 알려져 있습니다. [퍼펙트 머더]에서 데이빗의 그림과 사진이 비고 몰텐센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에피소드이고, [G.I.제인]에서 D.H.로렌스의 시를 인용하는 장면은 비고 몰텐센이 직접 리들리 스코트에게 그 장면을 넣자고 제안했다고 하지요. 『LotR』의 DVD 서플먼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안 맥켈런, 크리스토퍼 리에 못지 않게 동료 배우와 스태프·감독에게 배우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소화해 내기 위한 극진한 정성. 주위 사람들을 자신에게 몰입시키는 묘한 힘과 카리스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반전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당당함.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역할을 여럿 맡아왔음에도 매너리즘이나 비슷비슷한 느낌이 아닌 매번 새로운 인물의 새로운 매력을 창조해낼 줄 아는 배우로서의 묵직한 존재감. 그의 사진이나 그림, 시에서 엿보이는 풍부한 예술적 감성. 이 모든 것은 비고 몰텐센이라는 배우에게 그가 실제로 갖고 있는 능력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이제 『LotR』의 아라곤을 뛰어넘은 또 다른 그의 자리를 다져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꼬리> 크리스토퍼 워큰과 함께 나온 [The Prophecy]를 아직도 못 봤습니다. T_T 어디서 구할 수 있을런지.


비고 몰텐센 : imdb.com

200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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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년, 비고 모텐슨

2005/11/26 22:53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아라곤에 대해서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상관없지만 영화만을 보신 분들의 경우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소설과의 차이를 쉽사리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아라곤'의 변화가 참 인상깊었습니다. 다 해어진 검은 망토를 두르고 호빗들을 리븐델로 인도하는 스트라이더의 뒷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상상만 하던' 장면이 눈앞에 나타났기에 그저 좋았지만, 스트라이더이자 아라곤이며, 이실두르의 후계자, 누메노르 왕가의 후손인 그는 소설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영화 속의 아라곤은 강인하지만 슬픈 눈을 지녔고, 검을 휘두르는 그의 뒷모습은 왕의 권위보다 한 인간의 괴로움이 더 많이 묻어난다고나 할까요.

소설에서의 아라곤은 참으로 자신만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트라이더로 자기 신분을 숨기고 있는 와중에도 늘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가서 자기의 왕좌를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비바람을 맞고 있을지언정 자신의 반려 알웬 운도미엘과 함께 곤도르의 왕좌로 가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요. 거친 황야에서 스트라이더라는 이름 아래 살아갈 때에도 늘 위험한 변경지대에서 인간들을 지키던 그는, 처음부터 왕이었습니다. 리븐델에서 원정대가 출발할 때도 그는 부러진 나르실Narsil을 다시 벼린 안두릴Anduril(서쪽의 불꽃Flame of the West이라는 뜻)을 지니고 자기 입장을 확실히 천명합니다. 소설에서의 아라곤은 프로도와 함께 모르도르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가 왕위를 찾으러 떠난다는 '공식적인' 목적 하에 같이 동행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거지요(물론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두고 혼자 길을 떠날 위인도 아니지만;). 이것은 로스로리엔에서 갈라드리엘이 그에게 이븐스타를 건넬 때에도 다시 강조됩니다.

This stone I gave to Celebrian my daughter, and she to hers; and now it comes to you as a token of hope. In this hour take the name that was foretold for you, Ellessar, the Elfstone of the house of Elendil!
이 보석은 내가 내 딸 켈레브리안에게,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자기 딸에게 물려준 것이오. 이제 그것이 그대에게 희망의 증표로 가게 되는군요. 이 시간 이후로 그대에게 예언되었던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시오. 엘렌딜의 후계자인 요정돌 엘레사르여!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p.493, Harper Collins



이 뿐만 아니라 (영화 The Two Towers에서는 어떻게 묘사될지 잘 모르겠지만)소설에서는 로한의 에오메르 일행과 마주쳤을 때부터 줄곧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르실을 다시 벼린 안두릴을 자랑스레 휘두릅니다(어떨 땐 '좀 참아주세요 왕님;'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나중에 팔란티르를 보고 왔다고 할 때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니까 내가 누구의 후계자인지 잊었냐며 호통을 치기까지 하시지요. 인간들의 왕이지만 고귀한 누메노르 왕가의 위엄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는, 그야말로 왕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어떤가요. 물론 나르실의 파편을 소중히 하고 거칠어진 왼손에 바라히르의 반지를 끼고 있는 이상 그가 이실두르의 후손이라는 것을 절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핏줄에서 늘 '나약함'을 찾습니다. 절대반지의 유혹 앞에서 굴복하고 만 이실두르의 나약함을 말이죠.


Why do you fear the past? You are Isildur's heir, not Isildur himself.
You are not bound to his fate.
왜 과거를 두려워하죠? 당신은 이실두르의 후계자이지 이실두르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의 운명에 매여있지 않아요.
The same blood flows in my veins, same weakness.
똑같은 피가, 똑같은 나약함이 내 핏줄 속에 흐르고 있다오.
+++
Leave it. It's over. The world of men will fail. All will fall into darkness, and my city to ruin.
놔두게. 이제 끝났어. 인간들의 세계는 무너질걸세. 그리고 어둠 속으로 빠져들 것이고, 나의 도시도 파멸할거야.
I do not know what strength lies in my blood, but I swear to you
I will not let the White City fall, nor our people fail.
내 핏줄에 어떤 힘이 흐르는지는 모르지만, 자네에게 맹세하겠어.
백색도시가 무너지도록, 우리의 종족이 파멸하도록 그냥 두지 않겠네.
Our people. Our people.
우리 종족. 우리의 백성들.
I would have followed you, my brother, my captain, my king.
자네를 따를 수 있었건만. 나의 형제여, 나의 대장이여, 나의 왕이여.
Be at peace, son of Gondor.
편히 잠들게, 곤도르의 아들이여.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입니까. 아직도 파랗게 날이 서있는 나르실의 파편만큼이나 이실두르의 죄가 아직까지 그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두려움이나 연약함 같은 면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강인하기 그지 없는 소설에서의 아라곤에 비해, 영화에서의 아라곤은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팔란티르와 나르실을 정당하게 상속받을 권리를 가진 곤도르 왕가의 후계자이면서도, 그의 핏줄에 엘프의 피가 섞여있음에도, 그 누구도 범접 못 할 고귀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는 늘 자신의 나약함을 두려워하고 경계합니다. 그것이 이실두르를 대신한 중간계에 대한 속죄일지도 모르지요. 보로미르가 죽는 순간까지도 아라곤은 자신의 힘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곤도르 섭정의 후계자인 보로미르가 죽기 직전 그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한 순간, 그는 나즈굴의 손에 넘어간 미나스 이실(=미나스 모르굴)을 되찾고 미나스 티리스(=미나스 아노르)의 왕좌로 돌아갈 결심을 굳힙니다.

엘프들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 인간들이 중간계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르는 때에 아라곤은 인간들의 수장이라는 책임을, 그의 선조가 뿌린 씨앗을 대신 거둬야만 하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곤도르 섭정의 후계자 보로미르가 죽기 직전 충성을 맹세한, 진정한 왕으로서의 임무까지도요. 그의 어깨에는 수많은 목숨들이 그 무게를 더하고 있지만 아라곤은 그 짐을 절대 저버릴 수 없습니다. 미나스 아노르와 미나스 이실이 본래의 영광을 되찾을 그날, 엘레사르 왕은 희망의 상징이었던 이븐스타를 가슴에 달고, 고난과 영광의 상처로 거칠어진 왼손에 바라히르의 반지를 끼고, 되살아난 나르실과 팔란티르를 지니고 그의 영혼의 반려 알웬 운도미엘과 함께 백색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인 '에스텔Estel(엘프어로 희망이라는 뜻)'처럼요.


200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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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22:50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내 기억 속에서나마 편히 쉬기를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저랑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분들은 '왜 이 녀석이 아직 이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까'라고 궁금하게 여기셨을 겁니다. 네, 바로 리버 피닉스입니다. 매년 10월 31일이면 어김없이 [Stand By Me]를 빌려보고, 매년 검은 옷을 입고 다니고(훗, 아무도 알아주지 않건만. -_-), 그렇게 혼자서 '젠장 왜 빨리 죽은거야. T.T'라고 아쉬워 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엔 구구절절 쓸 얘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어김없이 영화잡지의 표지들은 리버 피닉스로 도배가 되고, 그걸 보면서 '아, 또 한 해가 지났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세계를 뒤흔들만한 히트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배우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걸까요. 왜 수많은 사람들이 리버 피닉스에게 그토록 매달리는 걸까요.

한마디로 말해볼까요? 우리가 쫓고 있는 것은 그의 환상입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토록 넘기 힘들었던 현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막연한 동경심에서 비롯되는 환상인 겁니다. 그는 이미 죽었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비디오 가게 어느 한 구석에서 뽀오얗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거에요.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해마지 않는 [아이다호]도 우.리.가. 바.라.는. 그의 이미지가 거의 100%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고, 안스럽고, 홀로 외로워하다가 결국은 죽어가는. 어느새 우리는, 아 '우리'라는 호칭은 근거없는 일반화가 되겠군요. '나'는 어느새 그가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리버 피닉스의 이미지는 이런 거라야만 해!'라고 정해놓고 그 잣대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거죠. 어줍잖은 삶에 대한 투정, 나 혼자만이 껴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괴로움, 그걸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는 있지만 막상 흘려넘기기엔 힘들 수밖에 없는. 그 모든 것을 '리버 피닉스'라는 존재에게 떠넘겨 버리고 그를 보면서 안스러워 하는 겁니다. 내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도취되어서 말입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CF와 TV에 출연하며 꿈을 접어야 했다는 그의 '현실'은 제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리버 피닉스는 그의 팬들의 이웃집에 사는, 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10대 소년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리니까요. 이웃집 소년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는(혹은 나의 고민을 완전히 떠넘겨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사실 [아이다호]는 그의 작품 중 결코 뛰어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리버 피닉스를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다호]가 그토록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의 눈빛이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은 [스탠바이 미]나 [바람둥이 길들이기(케빈 클라인이 나오는, 자신이 일하는 피자집 여주인을 짝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으로 나오지요)]에서의 때묻지 않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하지만 그 순수함만큼이나 자기 고집이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가 나쁘다는건 아니에요. 다만 그의 '이미지'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지고 있다는게 문제인 겁니다. 현실 속의 리버 피닉스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을 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영화 속에서 재현되어지는, 그리고 그로 인해 돈을 벌게 되는 모순 말입니다.

자, 다르게 생각을 해볼까요? 만약 리버 피닉스가 차근차근 영리하게, 이를테면 톰 크루즈처럼 매스미디어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성공적인' 입지를 다져갔다면 그토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을까요? 불우하고 어딘가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안정된 성인으로서의 변신에 성공했다면,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면 내가 그를 그토록 그리워 했을까요? 연기력으로서는 인정받고 한 끗발 하는 좋은 배우는 될 수 있을 지언정 사후 10여년이 지나도록, 매년 10월마다 '아, 그가 죽었었지'라고 씁쓸하게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는 않았을 거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가 계속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은근슬쩍 바라고 있고, 그런 이미지가 절정에 이른 순간에 약물 중독(이게 또 '이미지 유지'에 의외로 중요하지요. -_-;;)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런 환상과 동경이 증폭되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죽어서 잘 되었다 싶은 것도 그가 성장하지 못한 채 대중들이 그에게 바란 것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가 그렇게도 극복하고 싶어했던 것을 죽는 순간까지 떨쳐버리지 못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를 그토록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게 한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르고요.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그를 쉬게 해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검은 옷을 입지 않고, 그저 B.E.King의 노래를 들으며 슬쩍 웃기만 했지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그를 추억해본댔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그 곳에서 편히 쉬게 내버려두고, 나는 내 삶을 꾸려가야만 합니다. 이제는 슬프고 힘들고 견디기 힘든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요. 나마저 그 '환상'에, '이미지'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나는 '살아' 있으니까요.

R.I.P River Phoenix.

[Filmography]
Silent Tongue (1994)
The Thing Called Love (1993)
My Own Private Idaho (1992)
Sneakers (1992)
Dogfight (1991)
I Love You to Death (1990)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Little Nikita (1988)
A Night in the Life of Jimmy Reardon (1988)
Running on Empty (1988)
The Mosquito Coast (1986)
Stand by Me (1986)
Explorers (1985)


200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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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22:49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카일 맥라클란(Kyle MacLachlan)-처음으로 빠져들다 [창고/사랑해마지 않는 그들]
네...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쿨럭...) Etc의 첫타자는 다름아닌 저의 첫.사.랑.이었던 카일 맥라클란입니다(어디선가 "훗, 그럴줄 알았지."라는 비웃음 비슷한 게 들리는군요. 이를테면 P모 언니같은...;;그래도 어쩔 수 없다구요).

사실, 여기저기 얼굴 내민 곳은 많지만 그렇게 인기가 있다, 라는 것은 잘 모르겠어요. 그나마 중학교 때 [트윈픽스 Twin Peaks]를 방영할 때는 인기가 꽤 있었지만, 그 후로는 국내에서는 [트윈픽스]만한 인기작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트윈픽스]에서의 데일 쿠퍼는, 정말이지 그의 이미지에 너무나 어울리는 캐릭터였죠. 단정하게 빗어넘긴 올백머리와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정장과 트렌치코트 차림에, 은근슬쩍 남을 배려하는 재치와 빛나는 유머(물론 대본을 써준 대로 연기를 한 것이겠지만) 유연한 사고로 사건을 파고드는 FBI 특별수사관 데일 쿠퍼는, 중 2 여학생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겁니다!!! 그때부터 전 카일 맥라클란의 사진을 찾기 위해 로드쇼며 스크린을 뒤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트윈픽스]라는 걸작의 영향도 물론 있었지만요. ^^;; 카일 맥라클란은 이 작품으로 1990년에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카일 맥라클란은 1959년 2월 22일 워싱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릴 때 드라마에 아역으로 출연했고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의 [Dune]의 폴 아트레이드로 데뷔하면서 그의 영화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국내 출시는 되어 있는데 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2번째 작품은 역시 데이빗 린치의 [블루벨벳 Blue Velvet]입니다. [블루벨벳]에는 이사벨라 롯셀리니도 출연하는데, 여기서 카일 맥라클란은 쓸데없이 호기심이 가득해서 이사벨라 롯셀리니의 아파트에 숨어들다가 갖은 봉변을 당하는 순진한 청년 제프리를 연기했죠.


아마도 그 때부터 그의 영화캐릭터가 어느 정도 정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탄한 삶을 연기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어딘가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일상 속에서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죠. 언젠가 키노에서 본 기사에 이런 말이 적혀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데이빗 린치가 원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페르소나가 굳혀져 버린 비운의 배우". 가슴 아프지만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미지가 극대화된 것이 바로 [트윈픽스]의 데일 쿠퍼구요.


올리버 스톤의 [도어즈 Doors]에서 그는 키보디스트 레이를 연기했습니다. 금발 더벅머리에 안경을 쓰고 나오는 모습...어느 정도 정감있기는 하지만 전 이 캐릭터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The Flinstones]에도 출연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좀 준수한 모습으로 출연한 것이 [원나잇 스탠드 One Night Stand]와 [쇼걸 Showgirls]입니다만, 그의 이름값과는 관계없이 [원나잇 스탠드]에서는 온실에서 바람피다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으로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T.T 특이하게도 [원나잇 스탠드]에선 일부러 나이 들어보이는 이미지를 나타내려고 했는지 희끗희끗한 머리가 눈에 띄더군요. 하룻밤 놀아나는 것은 나스타샤 킨스키와 똑같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조연의 조연에 불과한 초라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나마 [쇼걸]에서는 엘리자베스 버클리를 요령있게 꼬셔서 목적을 이루는 비열한 에이전트로 출연합니다. 캐릭터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안타까운 것은 크레딧에 두 번째로 이름이 나오는데도 출연횟수가 너무 작다는 슬픔이. T.T

솔직히 말해서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미남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얼굴은 아닙니다만, 뚜렷하다 못해 고집있어 보이는 이목구비와 단단한 턱은 다양한 표정을 연기하기엔 어느 정도 장애가 됩니다. 그가 맡은 역할 중 유순하며 평범한 역할은(적어도 제가 본 그의 출연작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게 그 증거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의 굳은 얼굴과 연기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데이빗 린치의 작품들입니다. 배우에게 있어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버린거죠. 그의 매력은 굳은 턱에서 비롯되는 날카로운 지성미와 카리스마입니다. 그리고 데이빗 린치는 카일 맥라클란의 이런 매력을 110% 활용한 감독이고요. [트윈 픽스]로 카일 맥라클란은 연기력을 확실히 인정받고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그의 굴레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얼굴이 조금만 더 평범하게 생겼더라도(이를테면 톰 크루즈같이, 깎은 듯한 미남이 아니면서 표정이 어느 정도 유연한) 상황은 달라졌을까요?? 그냥 "그런 배우가 있었지"라고 묻어두기엔 너무나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가 바로 카일 맥라클란입니다.

카일 맥라클란 : imdb.com

200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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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년, 카일 맥라클란, 트윈픽스

2005/11/26 22:46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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