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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2   [외과의사 봉달희]-외과의사 안중근 
2006/04/09   슬로우댄스(スローダンス) 
2005/11/26   러브 스토리(Love Story)-싱그러운 과일같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 
2005/11/26   다모(茶母)-소리없이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마음에 스며들다 
[외과의사 봉달희]-외과의사 안중근 [창고/텔레비전을 틀고]
주의 : 이 글은 드라마의 전반적인 짜임새나 의학적 사실의 충실한 재현여부를 논하는 글이 아닙니다(아니, 사극이면 혼자 책 뒤지면서 공부라도 할 수 있지만 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 속 오류를 평범한 시청자가 어떻게 논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렇다고 그런 오류를 눈감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또 아니지만 말이죠). 오로지 이 글은 드라마 속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지극히 가벼운, 개인적인 느낌과 재미만으로 일관한 글임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따라서 당연히, 심도있는 분석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원래 갑작스런 버닝은 더 탈 거리가 나오기 전에 이처럼 하얗게 재로 만들어버려야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이죠.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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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수

2007/03/22 21:47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슬로우댄스(スローダンス) [창고/텔레비전을 틀고]
각본: 에토 린衛藤凛
연출: 나가야마 코조永山耕三, 히라노 신平野眞, 나리타 아키라成田岳
주연: 츠마부키 사토시妻夫木聡 (세리자와 리이치芹沢理一)
후카츠 에리深津絵里 (마키노 이사키牧野衣咲)
히로스에 료코広末涼子 (코이케 미노小池実乃)
후지키 나오히토藤木直人 (세리자와 에이스케芹沢英介)
고이즈미 코타로小泉孝太郎 (야시마 유타八嶋優太)
에비하라 유리蛯原友里 (소노다 유키에園田雪絵)
다나카 케이田中圭 (하세베 코헤이長谷部幸平)
니시노 아키히로西野亮廣 (키다 타카시木田貴司)
고바야시 마오小林麻央 (히로세 아유미広瀬歩美)
누쿠미즈 요이치温水洋一 (이치사카 스스무一坂進)



일요일 저녁, 밥상 앞에 앉아서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츠 에리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슬로우댄스] 4화 초반이었다. 비록 제대로 챙겨보지는 않지만 간만에 보는 일드구나 싶어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내려놓았더니만 웬걸 히로스에 료코에 후지키 나오히토까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안티크] 때보다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의(그러니까 얼굴 주름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후지키 나오히토 때문에 환호성을 지르며 보기 시작했지만 막상 4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휩싸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의 [러브스토리]를 봤을 때처럼 느릿하게, 그러나 뚜렷하게 서로의 존재를 조금씩 가슴속에 담아가는 인물들. 보는 사람은 한없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 속 그네들의 그 묘한 두근거림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것만 같은 기분좋은 설렘.

한때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스스로 발길을 돌린 남자.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현실의 벽을 이루고 있는 벽돌부터 하나씩 깨고 다듬으려 하는 여자. 언뜻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연상연하 커플은 한때 스승과 제자(비록 교생이긴 하지만) 사이였으며 지금은 운전학원의 강사와 수강생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며 안전운전을 강조하는 강사 25살의 리이치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31살의 의류매장 매니저 이사키. 무조건 액셀 페달부터 밟고 보는 이사키의 페이스에 휘말려 저도 모르게 고속도로를 타버린 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 했던 자신의 꿈을 되돌아보게 된 리이치는 7,8년 전 새파란 고등학생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희망을 버리지 말라.’라고 얘기하던 교생 이사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내달리려고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붙잡아두던 고리를 끊을 용기를 얻는다.

사실 드라마 내용은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한(=뻔한) 내용이다.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꽤나 전형적이라 보고 있자면 이들의 행보를 얼추 다 짚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내 눈을 잡아끌며 급기야 이틀만에 11화까지 몰아서 보게 된 이유는, 지금의 자기 나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얼굴을 지니고 자기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라 하겠다. 33세, 32세의 후지키 나오히토와 후카츠 에리, 1980년생 동갑내기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히로스에 료코. 배우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기력을 접어두고서라도 술잔을 입에 대고서 살짝 미간을 모으는 이사키, 후카츠 에리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배우에게 있어서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춤추는 대수사선] 당시의 후카츠 에리가 이사키 역을 연기했다면―물론 무리없이 소화해내기는 했겠지만―32세의 그녀가 지금 전해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슬로우댄스]는 제목 그대로 참으로 느릿하게 흘러간다. 11화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았기에 망정이지 1주일에 한편씩 봤더라면 그 느린 호흡에 답답증을 못 이기고 가슴을 쾅쾅 치며 봤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끌리는 걸 느끼면서도 괜히 중언부언해가며 자신의 감정도 모자라 상대방의 감정까지 덮으려 하는 두 사람이라니. 그러나 급격한 흐름에 휩쓸린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어도, 자연스레 상대방의 생각을 알고 짚어내고 마음을 쓰는 일련의 과정들은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지인들이 내게, 맥주 한잔에 힘입어 살짝 털어놓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더없이 익숙해서 권태롭기까지 느껴지는 그 편안함이 [슬로우댄스]의 미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계속 시선이 가는 것이 비단 잔잔한 사랑 이야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한층 더 마음을 잡아놓는 것은 바로 리이치의 고민이다.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결코 싫지만은 않은, 마음먹고 매달린다면 누구보다도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아닐 때의 그 기묘한 간극. 이온음료를 아무리 마셔도 100%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는 미미한 갈증과도 같은 그것.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가능할 정도의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모든 것을 박차고 밀랍날개를 달 용기를 냈을 테지만 리이치는 그렇지 않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필름에 담아내고픈 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그렇다고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진 25살의 청년일 뿐이다. 행여 입밖으로 내었다가 애써 지켜오던 결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릴까 그저 속으로만 곱씹을 뿐인 리이치에게 깊이 감정이입하는 그 몇 시간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외면하지 못했던(혹은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현실을 뒤로 한 채 졸업작품 이후 처음으로 도전한 단편영화는 보기좋게 낙선하지만, 리이치는 천천히 자신의 꿈을 하나씩 필름 위에 담는다. 이사키와의 사랑의 시작이 그러했듯 그의 꿈을 향한 발걸음에서도 조바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꿈을 향해 되돌아오기까지 걸렸던 시간만큼,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도 그만큼 걸릴 각오를 했기 때문일까. 다른 것은 고민하지 말고, 그저 원하는 것을 향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드라마 속의 리이치 뿐만 아니라 바로 내 곁에도 있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마냥 부러워만 하면서도 도망가기 바쁜 소심한 나. 지금까지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았는데도 계속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은 너무 일찍 안주해버린 내 탓일까. 적어도 리이치와 이사키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금의 나는 과연 언제까지 지금 이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Slow Dance, Slow Love, Slow, Slow, Slow…. 나라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아니면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인걸까.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꼬리>여러모로 시기가 안 좋았다. 여.러.모.로.


200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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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15:15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러브 스토리(Love Story)-싱그러운 과일같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 [창고/텔레비전을 틀고]
각본: 기타카와 에리코北川悅吏子
주연: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穗 (스도 미사키須藤美嘯)
       토요카와 에츠시豊川悅司 (나가세 코우永瀨康)
       카토리 싱고香取愼吾 (나베토모 쿄지鍋友恭二)
       유카優香 (고바야시 카노小林香乃)
       가토 하루히코加藤晴彦 (이케타니 미츠구池谷貢)
       하타노 히로코畑野浩子 (쿠라다 유미倉田ユミ)
       고노 타케히코小野武彦 (카시와바라 슈조柏原修三)
       유타니 켄야コタニキンヤ (나가세 켄지永瀨ケンジ)
       미사키 치에코三崎千惠子 (나가세 요시永瀨ヨシ)
제작: TBSエンタテインメント


사실 나는 일본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본 편―아니, 거의 본 작품이 없다. 기껏 본 드라마라고 해봐야 [춤추는 대수사선], [안티크], [롱 베케이션] 정도랄까. 사실 [러브 스토리]도 출연진에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라는 이름만을 확인하고 어떤 작품일까 호기심에 1편을 구해본 것이 그야말로 '화르륵'이 되어버렸으니. 화려한 것도 아니고, 떠들썩한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닌 오히려 순박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러브 스토리]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러브 스토리'는 드라마의 제목인 동시에 화두이며 드라마 속 인물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부딪쳐서 늘 상처만 입는 미사키, 죽은 약혼자에 대한 기억에 얽매인 채 단지 '테크닉'만으로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써내는 나가세 코우, 하룻밤의 만남과 사랑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나베토모와 그런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해주는 카노, 그리고 또 다른 자신만의 사랑에 고민하는 이케타니와 유미. 20대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과 30대 성숙한 성인의 잔잔한 교감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나가세 코우와 스도 미사키의 사랑이 시작된다. 때로는 담당 편집자와 작가가 나누는 설전을 통해, 때로는 실연한 지인을 위로하며 건네는 술잔을 통해,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한 날카로운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좋아하는 감정을 적당히 숨기고 다가가는 방법을 모른 채 스트레이트로 돌진하는 미사키와, 상처입고 연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거친 말과 행동으로 일찌감치 벽을 쌓아버리는 나가세 코우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의 모습들과 닮아있다.

지난 사랑의 상처에 7년이나 그 아픔을 떨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나가세 코우나, 매번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에 실패하면서도 '또 다른 사랑을 만나고 싶어'라고 소망하는 미사키의 모습은 언뜻 보면 정반대 같지만, 사실 그 둘은 닮은꼴이다. '사랑'이라는 그 감정의 호흡을 조절하며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둘 다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 누군가 발을 디미는 것조차 두려워 마음의 창을 꽁꽁 걸어 잠그고, 다른 한 사람은 매번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가 차가운 비바람만 잔뜩 맞게 되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까다롭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나가세 코우가 그토록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마음속으로 순수한 사랑을 늘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사랑할 용기를 내는 대신, 사랑을 원고지 위에 풀어내어 독자들이 꿈꾸는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에 만족한다.

다른 편집자들이 부수와 유명세만을 믿고 나가세 코우에게 찾아오는 데 반해, 미사키는 나가세의 글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그만의 '진실'을 읽어낸다.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가라는 주의 사람들의 충고가 무색하게 '그가 좋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 뒤 재볼 생각도 않고 고백해버리는, 그만큼 자신에게 솔직하기 그지없는 미사키였기에 나가세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코우처럼 순수한 사람이었으니까, 코우처럼 상처를 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상처를 새로운 사랑으로 다시 감싸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미사키가 그의 마음속을 파고들기 시작할 때, 코우는 또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만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코우는 2년 간의 슬럼프 끝에 진심을 가득 담은 새 러브 스토리를 쓸 수 있게 된다. 바로 자신과 미사키의 이야기를. 이제 남은 것은 그 자신이 '러브 스토리'의 결말을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다.

드라마 [러브 스토리]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오프닝이다. 주인공인 미사키와 나가세 코우 모두 순백의 옷차림을 하고 살짝 미소짓는 가운데 싱그러운 야채와 과일들이 교차된다.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아도 깨끗한 물에 씻기만 하면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금방 상처가 나버리는 야채와 과일들은 마치 미사키와 코우 두 사람을 나타내는 듯 하다. 순수함, 그러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나약함, 하지만 날것으로 한 입 베어 먹어보지 않으면 그 진정한 맛을 결코 알 수 없는 것처럼. 노 메이크업의 얼굴이 환한 조명 아래 클로즈업 되었을 때 멋쩍은 듯 슬쩍 웃음을 띄우는 토요카와 에츠시의 주근깨 가득한 그 얼굴마저도 [러브 스토리]의 나가세 코우의 여린 속마음을 나타내는 듯 하다. 서로를 슬쩍 건너다 보다 쑥쓰러운 듯 웃음짓고 슬며시 손을 잡고….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사랑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들이, 앞으로는 서로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바로 그들만의, 그들을 위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200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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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카와 에츠시

2005/11/26 22:53 | 관련글(트랙백) 0 | 댓글 0
다모(茶母)-소리없이 내리는 비처럼, 그렇게 마음에 스며들다 [창고/텔레비전을 틀고]
주연: 하지원(장채옥/재희)
이서진(황보 윤)
김민준(장성백/재무)
박영규(조세욱)
권오중(이원해)
이한위(백주완)
이문식(마축지)
노현희(타박녀)
정 욱(정필준)
정호근(최달평)
권용운(노각출)
배영선(난희)
김민경(수명)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뜬금없이 뭔 소리들인가. 얘길 들으니 드라마 [다모]에 나온 대사 한 구절이란다. 궁금해졌다. 그것도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가 저거란다. 더욱 궁금해졌다. 결국 뒤늦게야 5화부터 [다모]를 보기 시작했고, 14화로 종영한 그 날 1화부터 다시 다운을 받아 보았고, 급기야는 게으름 신을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상글까지 끄적거리게 되었으니 놀랍도다 늦바람이여.

드라마가 이쯤 되면 원작도 궁금해지는 법. 정말 우연히도 명절 음식의 기름냄새를 피해 만난 친구와 함께 들른 커피숍에서 방학기 님의 『다모』 1, 2권을 보게 되었다. 의외로 원작과 드라마는 다모와 사주전이라는 큰 뼈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원작은 좌포청의 다모 채옥의 활약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황보 윤 종사관과의 관계도 채옥이 종사관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 황보 윤이 채옥을 아끼고 있다는 것만을 거의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인물들의 내면 심리도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활약했던 '다모'의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자세히 묘사하는 역사물에 가깝다(적어도 2권까지의 내용은 그랬다). 그러나 드라마는 원작의 큰 설정에 기대어 세부적인 것들을 거의 새롭게 재창조했다. 아비가 역모로 몰려 어릴 적 노비로 팔려간 채옥의 신상 설정과 생이별한 그 오라비 장성백, 그리고 서자로 태어나 종사관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 황보 윤, 그를 연모하는 난희, 그리고 말없이 성백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성백을 향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수명, 강직하면서도 수하를 아끼고 자식을 염려하는 따스함을 갖춘 조세욱, 약방 감초 같은 개성파 조연들. 주인공들도 그렇고 조연들의 성격까지 세세한 곳까지 탄탄히 설정된 탓인지 다소 빈약하다 싶은 주인공들의 연기¹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 없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모]의 매력이라면(그리고 모든 드라마가 반드시 갖춰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역시 '인물'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액션 연기도 좋고, 늘어지지 않는 긴박한 연출 또한 좋다(특히 액션 장면에서의 과감한 생략과 카메라 워킹은 참 돋보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 속 인물들 하나 하나가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비빔밥처럼 잘 섞여있는 가운데 어딘가 입맛을 자극하는 톡 쏘는 맛들이 숨어있는 그 절묘함이란! 주인공 채옥, 윤, 성백의 성격은 거의 판이하게 다르고, 때로는 이들이 부딪쳐 벌이는 신경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재미다.

먼저 황보 윤의 경우(5화부터 보고서는 '스탠다드 미남은 내 타입이 아냐'라고 외면했던 황보 윤 종사관께 이 자리를 빌어 사죄드리는 바이다), 서자로 태어난 설움을 이기지 못해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피나는 수련을 한 끝에 결국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은 인물이 바로 그다. 무예에 있어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버젓한 양반가의 자제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으면서도 단지 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그만큼 인내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 데는 이력이 났을 터인데도, 때를 기다리고 일을 도모하는 치밀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채옥에 대해서만큼은 참고 견딜 줄을 모르고 성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니, 오호라 그 모습에 가슴 떨리지 않을 여인네가 어디 있으랴!

윤에게 있어 채옥은 '참는다고 얻을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었고, 수년 간 가슴에 담아온 그녀의 존재는 황보 윤 자신도 어느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것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은 그이지만 난희에게 짜증 섞인 차가운 말로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말아달라는 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조선팔도에 당할 자가 없다는 종사관이라 한들 결국 그도 사랑하는 여인의 안부를 걱정하느라 안달이 난 한 사내에 불과하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사랑한다', '너를 안고 싶다'라는 말도 제 때 못해보고 그저 조심스레 뺨을 매만지고 안아주는 사람이 바로 윤이다(아이고 나으리. T_T). 채옥이 성백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기 마음을 접으려 애쓰다가도, 성백과 채옥의 관계를 알고 결국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기 위해' 달려나가는 사람이 바로 황보 윤이다. 사랑하는 이의 오라비에게 칼을 맞고서도, 그 오라비가 채옥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말에도 '사랑한다'라는 말 한 마디도 입 밖에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일곱 살 계집아이 재희가 여인 채옥이로 자랄 때까지, 그 속내에 그녀를 그렇게나 가득히 담아두고서 계속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윤. 그나마 마지막 순간에 채옥이 곁에 있어주었으니 마지막 잠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어릴 적 헤어진 누이의 옷고름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리움과 서러움을 견뎌 온 성백.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린 부친과 그로 인해 풍비박산 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신의 안위에 그치는 대신, 그는 이 땅의 백성을 위해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백성을 위하고 또 아끼는 마음은 결국 생이별한 누이 재희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 어딘가에서 살아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어미가 되어 그렇게 이 땅의 한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을 누이를 위해 성백은 검을 휘두른다. 그러다 만난 한 여인에게서 그는 왠지 모를 인연을 느끼게 된다. 그 시작이 본능적으로 피붙이에 대한 이끌림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의 도움으로도 충분할 것을 그는 구태여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계속해서 그녀를 돕는다. 급기야는 좌포청의 다모란 것을 알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산채 식구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위험을 무릅쓰고도 채옥을 산채에 머무르게 한다. 윤이 채옥에게 자신의 마음을 때로는 과감하다 싶을 만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성백은 그녀를 맘놓고 한번 쓰다듬어보지도 못하고 대신 그녀의 몸에서 빼낸 총탄만을 주먹 가득 그러쥘 뿐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이기 이전에 그는 아우들의 형으로 남는 것을, 백성을 구하는 혁명가의 길을 택해야만 했기에 애써 '사랑'을 접으려 한다. 지금까지 성백은 백성의 한 사람 '장재무'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산채 식구들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조선의 개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장성백'의 인생을 '살아와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 자기 한 몸의 안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 자신의 감정만을 소중하게 여겨서도 안 되었다. 그러나 그런 성백이 느낀 그만의 '사랑'의 감정이, 그 애틋함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누이를 무의식중에 알아본 것임을 알게 된 그는 차라리 후련하다는 듯 미소를 띄운다. 수없이 되뇌었던 누이의 이름을 입 밖에 차마 내지 못하고, 바람에 칼날을 실은 채 대숲 사이로 자신을 향해 칼끝을 겨누는 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지금까지 힘겹게 짊어져 왔던 형제들에 대한 책임과 백성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다짐, 무겁기만 한 짐을 한순간이나마 망각할 정도로 애타게 목말라했던 재희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간신히 누이의 이름을 부른 그 순간…. 결국 그는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다가 한 여인의 오빠로서 죽어간다.


자, 이제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문제(?)의 인물 채옥이다. 그녀는 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궁궐에 잠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인질이 되기까지 한다. 어린 시절부터 윤과 함께 지내며 아버지처럼, 오라비처럼 그를 의지해 오던 채옥은 자신을 노비가 아니라 한 인격체로, 그리고 누이와도 같은 존재에서 점차 '여인'으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려 한다. 처음 윤을 만난 그 날, 윤은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서자로 태어난 설움을 어린 재희 앞에서 토해내고, 재희는 그런 윤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윤의 아픔을 계속해서 지켜봐 온 재희―채옥은 그가 지금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과 윤이 함께 할 수 있는 미래 또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윤의 앞길을 늘 염려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위험을 두려워않는 그녀지만 성백을 만나면서부터 채옥은 흔들리게 된다.

아무리 채옥이 윤을 사랑하고 연모한다 해도 신분의 벽에 가로막히고, 설령 맺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가 윤의 미래에 해를 끼치게 될 터이지만 성백의 경우는 확연히 다르다. 화적 두목이라 해도 고귀한 인품과 지력을 지녔고, 높은 이상을 품었으며 그와는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적어도 그 가능성이나마 바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쪽이 먼저 채옥의 정체를 알고서도 '산채에서 오래도록 같이 살자'라고 하지 않는가!! 아마 채옥이 성백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윤을 향한 채옥의 감정이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쌓아온 믿음과 정, 동병상련의 애틋함이 한데 뒤섞여 마치 자신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굳은 사랑이라면, 성백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말 그대로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인력(引力)과도 같은 것이다. 일곱 살 기억 속에서만 아련히 살아있는 오라비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그를 그리워하는 채옥. 그 그리움의 정체를 알지 못해 또 다시 번민하고 괴로워하며 윤에게 떠나겠다고 말하는 그녀.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의 칼에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죽고, 칼을 겨누고 죽이리라 맹세한 상대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오라비임을 안 순간,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총탄과 화살 앞에 몸을 던져 성백을 안는다. 한 번은 헤어졌을 망정, 죽어 가는 순간만큼은 헤어질 수 없다는 듯이.

혹자는 그 세 명이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고, 굳이 다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세 명이 그렇게 '죽을 수 있어서'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어느 한 명 혹은 두 명만이 살아남는다 해서 그 상처가 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죽었든 간에 남은 사람의 가슴에는 새 살이 돋지 '않는' 상처만이 남았을 것이고, 그것을 보듬어 줄 이도 없이 혼자 남게 된다면 차라리 사랑하던 이의 곁에서, 그리워하던 이의 곁에서 함께 죽어 가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네들의 삶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서럽고 고달팠고, 서로의 존재만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았을 그들이, 그런 세 명이 서로를 잃고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앞날을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웃음 띤 채 죽어 가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채옥과 윤, 성백의 애증이 극으로 치닫는 부분이라 한다면 역시 동굴 신일 것이다. 지나치게 길다 싶은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짧더라도 그 역시 곤란한 부분. 채옥은 동굴 속에서 성백의 상처를 돌보며 그를 향한 마음을 굳히게 되고, 성백 역시 채옥의 마음을 알게 된다. 동굴은 채옥에게 있어 그녀를 속박하는 '현실'과 '의무'와 단절되는 곳이고, 성백에게 있어서는 죽음을 예감하며 비로소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정화의 공간이며, 윤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의 채옥과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성백을 향한 증오의 공간이기도 하다. 만약 동굴에 채옥과 함께 갇힌 게 윤이었다면, 채옥은 그에게 성백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처럼 솔직하게 매달릴 수 있었을까? 그녀는 누구 앞에서든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울음과 설움을 터뜨려야만 했고 성백은 그것을 받아줄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이니까, 오빠니까, 세상 모두가 등을 돌린다 해도 결국은 감싸 안아줄 수밖에 없는 한 배에서 난 피붙이니까―. 동굴은 언뜻 보면 성백과 채옥의 사랑이 증폭되는 공간이 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들이 혈육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그들이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세 사람이 더욱 엇나갈 수밖에 없는 계기를 제공하는 곳이 되어 버린 것뿐. 그래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더욱 안타깝고 그들이 안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황보 윤과 채옥의 애틋한 사랑은 충분할 만큼 잘 묘사되었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아니, 사실 넘치면 시청자야 좋지만;). 그러나 성백과 채옥의 경우는 어떠한가? '본능적인 이끌림'이라는 설정을 이해시키려면 구구절절 표현하는 것도 어쩌면 구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을 꿈꾸는 수령'이며 산채의 식구들의 신뢰와 인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성백이 채옥을 향한 마음에 휩쓸려 한 순간에 평정을 잃는 모습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채옥이 누이임을 미처 몰랐다 해도 그녀를 진정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그녀를 설득했어야 했다. 그것이 장성백의 방식이고 그 덕분에 모든 이들의 신임을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채옥의 존재로 인해 자기 기반을 흔들리게 하고 형제들의 신뢰를 잃는 결정적인 원인을 '직접' 제공하는 셈이다. '사랑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그렇게 감정에 쉽게 도취되는 사람이었다면 새 세상을 꿈꾸며 오랜 세월 인내하며 기반을 다져 지금의 자리에 이른 '장성백'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게다가 마음을 주고 싶어하면서도 채옥을 100% 믿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나름대로 채옥을 시험해 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에둘러 가는 방법이 아니라 차라리 직구를 던졌어야 옳았다(괜히 변화구 슬쩍 던져봤다가 애꿎은 수명만 칼에 맞지 않았던가). 게다가 '언제 사람 잘못 본 적 있더냐'며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더니 정작 자기 목 밑에 칼을 겨누게 될 최달평²을 그대로 놔두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성백의 성격은 제대로 설정했을지 몰라도 그 성격을 설명해주는 주변 정황과 그에 대처하는 성백의 행동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조금만 더 치밀했다면 황보 윤 못지 않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을 장성백, 참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다모]는 14회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더 길었어도 안 되었고, 더 짧았다 해도 그 아쉬움은 못내 컸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가슴속에 묻고 또 그리워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엇갈린 사랑과 기구한 운명에 탄식하며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시청자들은 유난히 비 많던 2003년 여름, 7주간의 그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불같은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었다 해도 조용히, 오래오래 그 온기를 마음속에 간직해 온 윤과 채옥의 사랑처럼. 외면하려 해도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채옥과 성백의 만남처럼.


 

1) 2화에 특별출연한 조재현의 연기를 생각하면 확실히 주인공들의 연기는 미흡한 면이 아직 적지 않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어린 누이와 함께 살아남을 것을 당부하는 아비의 애끓는 마음을 단 몇 마디 대사와 파르르 떨리는 눈가로 모든 것을 표현해 낸 그 모습을 생각해 보라!!! (미중년 러브모드에서 비롯되었음을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
2) 최달평 역을 연기한 정호근 씨는 이제 TV 드라마에선 완전히 악역 전문으로 굳어져 버린 듯 하다. 누구보다도 연기를 잘 하는데다 훨씬 폭 넓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임에도 왜 그렇게 되어 버렸을까. 왠지 아쉽다.


200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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