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없는 세상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김은희
<나인>에 연재 당시(2000년) 작가의 곁에 함께 있었던 신디와 추새는 그 사이 종적을 감추었고, 날지 못하는 비둘기 앨리스도 아마 천수를 다한 것 같다. 신디와 추새, 앨리스가 있던 자리에 작가의 남편과 아들 이카가 새로이 부부와 가족의 인연을 맺으며 작품 연재 시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양이 페르캉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이 생겼음에도 작가는 청소기를 돌리다 사라진 신디와 추새를 떠올리며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책장을 넘기던 나도 순간 울컥하고 목이 메고 말았다). 언제나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던 존재들과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는 때가 오는 그 순간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0여 년이라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동안 함께 울고 웃고 뺨을 부비며 살아온 고양이들과 헤어져야만 할 때…. 그래서 제목이 『나비가 없는 세상』인 걸까.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 이별의 순간 때문에? 혹은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나비―즉 고양이―가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더없이 큰 기쁨과 감동을 느낄 또 하나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나비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은 지금보다 더 메마르고 삭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데뷔 이후 굵고 힘 있는 펜선으로 그려내는 강렬한 그림체(『나의 강』, 『M&M』, 『Guyz』 및 「귀환선」, 「Some like it hot」과 같은 다수의 단편들)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작가의 화풍은 <윙크>에 『소년별곡』을 연재하면서부터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든다. 바로 스크린톤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수작업만으로 모든 장면을 표현해낸 것이다. 스크린톤 없이 오직 펜선의 필압 조절만으로 (이 역시 탄탄한 데생력과 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더욱 세밀한 명암과 양감과 질감까지 자유자재로 묘사하며 한층 더 깊어진 그림체로 한 발짝 나아간 작가의 화풍은 『나비가 없는 세상』에서 다른 작품에는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을 더하게 된다. 바로 작품 속 고양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해 애착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비가 없는 세상』의 고양이들 역시 작품 속 주인공으로 그만한 관심을 주는 것 역시 ‘작가’로서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또 다르게, 『나비가 없는 세상』의 고양이들은 정말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해 데생을 하고 펜선을 입혔다는 느낌을 준다. 그저 내 곁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비롭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독립된 하나의 귀한 생명체를 조심조심 종이 위에 옮겨놓고는 사랑하는 마음에 잉크를 풀어 따스한 시선의 펜촉에 그 잉크를 묻혀서 보드라운 털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레 그려낸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다른 만화들(『왓츠 마이클』, 『Cat』, 『묘한 고양이 쿠로』 등)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비가 없는 세상』의 신디, 추새, 페르캉은 단순히 작품의 소재/주인공이 아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작가의 동반자이며 서로의 안식처이자 평생 잊지 못할 ―혹은 잊을 수 없는― 귀한 인연인 동시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상들을 어찌 말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없는 그 수많은 감정들이 신디의 또랑또랑한 눈빛, 추새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페르캉의 반지르르한 털결에 듬뿍듬뿍 묻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 사랑을 나누어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고양이라는 신비한 존재, 반려동물의 의미, 나아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따스한 마음과 한없는 사랑으로 가득한 『나비가 없는 세상』. 부디 신디와 추새, 페르캉을 비롯한 고양이들, 작은 생명체들이 힘없고 낯설고 익숙치 않다는 이유로 고통받지 않고 제 생명을 다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 작은 기원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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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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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Z-꿈꾸어라, 너희들의 신앙은 자유여야 한다! ([GUYZ] 中 윤시우)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김은희
출판사: 동화세계 (이런 출판사가 있었나? 라고는 묻지 마세요. 어쨌든 지금은 절판되어서 이 책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랍니다. -_-) 권수: 전 3권 (1994~1996) 김은희의 작품들은 많은 순정만화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굵고 강렬한 펜터치와 날씬하고 미끈하게 잘 빠진 미소년들 대신 '오호 이것이 진정 남자로다―!'라는 찬사를 절로 나오게 하는 멋진 남자 캐릭터들. 김은희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리고 서로 의지하고 우정을 쌓아가고, 그러다 서로 사랑하기도 하는 남자들이었다. 사실 김은희는 대중적인 작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단도직입적으로 만화 좋아한다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김은희의 작품을 아는대로 5개만 대보시오'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그의 그림은 너무나 멋있지만 스토리나 연출에 있어서는 약간 거친 면이 없지 않았고, 무난하게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낡고 오랜 나무액자」 같은 컬러 에스프리나 「앞으로의 긴 여백」 같은 단편들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 즉 호흡을 조절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보다 인상적인 한 장면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은희이다.그러나 <윙크>에 『소년별곡』을 연재하면서 작가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톤을 배제하는 대신 펜선을 가늘게 다듬어 더욱 섬세해진 그림과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어 그대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설정까지. '남학교에서 생활하게 된 여고생'이라는 설정 자체는 참신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베일 속에 가려진 남학교의 실상을 상당히 물위로 끌어올려 보여줌으로써 많은 인기를 얻었다(물론 전혀 고등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남자 캐릭터들―이건 지골로지 어딜 봐서 고등학생이란 말이더냐!!―, 게다가 '입맛대로 고르세요'라는 듯한 각 캐릭터들만의 성격부여도 크게 한몫을 했다). 그리고 『소년별곡』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을 작품이 바로 『GUYZ』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고교생들의 우정과 사랑―이라고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있는 작품이고, 약간은 미흡하고, 끝장면에 이르면 허탈함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내가 '김은희'라는 작가를 계속 좋아할 수 있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좋아하지만 어딘가 미흡하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GUYZ』는 김은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김은희의 작품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챙겨보아야 할 작품이다. 음악, 우정, 좌절과 방황, 그런 아픔을 서로 보듬어주고 덮어주고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는 친구들. 김은희의 작품들에서 엿볼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이 작품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감정을 다스릴 때와 폭발시킬 때를 아는 해찬, 필요한 순간에 모두를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안아 다독여줄 줄 아는 주원, 외곬수지만 그래서 더욱 순수한 산다라, 낯선 세상을 두려워하지만 계속 발을 내딛으려 노력하는 태여, 마음으로 학생들을 이해하는 때비 선생. 그들을 한 곳으로 밀집시키는 어떤 사건이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때비 선생의 린치 음모와 고교 음악제 등의 사건들이 있긴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결속시키기에는 약간 미흡하다) 각각의 캐릭터들의 개성과 이미지는 『소년별곡』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입시와 내신성적의 중압감같은 현실적인 문제 대신 그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위한 자유와 희망을 꿈꾼다. '꿈꾸어라, 너희들의 신앙은 자유여야 한다!'라는 때비 선생의 말 한마디처럼, 어제가 아닌 오늘을, 오늘이 아닌 내일을 꿈꾸는 그들. 단지 기타를 쥐고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현실이라는 굴레를 박찰 수 있는 힘을 얻는 그들. '그리고 또 다른 내일이 있잖아'라는 다소 구태의연한 마지막 대사조차도 그들의 뒷모습에는 더없이 어울린다. GUYZ, 그리고 김은희라는 작가가 딛게 될 새로운 길. 『GUYZ』는 어쩌면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그리고 그 결심을 독자들에게 알린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꼬리> 『GUYZ』 단행본에는 김은희님의 데뷔작인 「날개 달아주기」를 비롯, 주옥같은 단편 「Some like it hot」, 「앞으로의 긴 여백」, 「하드록」 등이 실려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그러나 찾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_-;;). 2001. 12. 15. '창고 > 만화, 나의 오아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5/11/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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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그들은 어떻게 사랑하는가 [창고/만화, 나의 오아시스]지은이: 김은희
출판사: 서울문화사 권수: 6권~ (1997~) -실제 작품은 1992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작가 김은희 씨가 <윙크>에 『소년별곡』을 연재하면서 그의 처녀작인 『M&M』이 새로 단행본으로 정리되어 나온 것으로 1997년은 서울문화사판 1권 발간 연도입니다. 이전에는 <육영재단-댕기네책들>에서 4권까지 나왔습니다. 참고하세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성별의 차에 의해서 구분되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북아프리카의 가상도시 모크샤. 힌두어로 "영원한 자유"를 뜻하는 중립 도시. 자유는 『M&M』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이다. 중립 도시라는 설정도 그렇고, 북아프리카라는 위치 설정도 그렇다. 작품 초반에는 전체적인 복선을 까는 대신 주인공 마리아와 마고의 친분을 쌓게 하기 위한 에피소드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때까지만 해도 『M&M』은 나이차이와 환경을 극복한 두 '남자'의 우정을 쌓아 가는 버디무비 형식이었다. 이념·종교·인종의 분쟁 대신 일년 내내 태양과 지중해와 소년들이 빛나는 고도(古都)인 중립도시 모크샤는 순수한 백지상태에 있지만 신이 내린 음악적 재능으로 충만한 마리아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런 모크샤와 마리아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CIA 요원 마고 헤밍웨이. 처음 그에게 다가온 모크샤와 마리아의 이미지는 제어할 수 없는 젊음과 혈기였지만 어느새 마고는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모크샤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마리아는 클럽에서 노래를 하며 그 노래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간다. 마고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마고를 만난 이후로 둘은 서로를 알아가고, 마리아는 마고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그 자연스럽고도 애틋한,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 그리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혹은 인식하지 않으려 하는) 마고는 "여기까지"라는 수위선을 정해놓고 자신의 감정을 접어두려 한다. 정규교육을 받고 CIA의 엘리트 요원으로(게다가 럭비와 섹스를 즐기는 지골로 타입의 미남♥―댕기네책들에서 나온 『M&M』 3권의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사실―) 어느 정도 사회의 타성이란 것에 익숙한 그로서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그들이 동성(同性)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리아의 입장은 다르다. 고아로 자라서 그저 음악에 의존해 살아온 그로서는 감정의 표현이 직선적이다. 다만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그렇다! 마리아는 문맹이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한다. ―심장이 아파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어떤 순간이라도 너 자신을 소중히 하겠다고 약속해 주겠니?" "약속할께요."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랑하느냐를 다루고 싶었다>, 바로 작가의 말이다. 동성애라는 사랑의 한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ROCK이라는 만국공통의 코드를 제시한다. 작품 전편에 걸쳐서 Frankie Goes to Hollywood부터 Gun's N Roses에 이르기까지(다분히 작가의 개인적 취향이겠지만서도) ROCK이라는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작가는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 거침없는 감정의 표출, 때때로 느낄 수 있는 세심한 기교. 그것은 마고를 향한 마리아의 외침이며, 마고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리아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중립도시 모크샤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대리전쟁에 휘말리고 회교분자들의 시위가 격해지면서 그들의 사랑은 고비를 맞는다. 온건주의자인 하단 의원이 폭탄테러를 당해 그의 어린 아들이 죽던 날, CIA요원의 신분으로 한 아이의 죽음에 슬퍼하기보다 테러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할까를 고민'해야만'하는 자신의 입장을 쓰디쓴 술로만 달랬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그 날밤, 마고와 마리아의 몸과 마음은 함께 포개진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모크샤를 둘러싼 정치적·국가적 분쟁은 그와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클럽에서 자유로이 노래하던 마리아를 그 소용돌이 안으로 끌어들인다. CIA 모크샤 지부장으로 발령 난 마고는 그의 입지 때문에 마리아를 곁에 두기에 곤란한 상황이고 소년원에서 나온 마리아는 헤로인에 빠져든다. 더 이상 합일점이 없을 것 같은 그들이지만 정신의 어느 한 자락만은 여전히 겹쳐져 있는 그들. 모크샤의 햇살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 햇살을 함께 만끽할 조금의 여유조차도 누릴 수 없고 그들의 사랑이 이어져나가는 작품의 연재조차도 너무나 힘겹다. 다시 그들의 이름이 나란히 불리어지기를, 함께 비를 맞으며 오렌지의 향기를 느끼던 그 강렬한 오후를 다시 맞을 수 있기를, 그런 마고와 마리아의 모습을 꾸준히 우리가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꼬리>서울문화사에서 나온 『M&M』에서는 마고와 마리아의 베드신이 삭제되어서 실렸습니다(개인적으로는 순정만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베드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베드신이 먹칠이 되어버리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혹시나 못 보신 분들이 있을까 하여 댕기네 책들에서 나온 『M&M』 4권의 베드신 장면을 스캔해서 올립니다(<마인>에 연재되었던 부분으로 원래는 처음 오른쪽 페이지부터 다섯 번째 왼쪽 페이지까지는 컬러 원고였습니다만 제가 컬러를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T_T 정말 아름다운 그림들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모든 권한은 당연히, 작가인 김은희 님께 그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 2002.8.18. '창고 > 만화, 나의 오아시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5/11/2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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