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Dark Knight)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2008) - 행인이야! 자, 무대 끝에서 끝까지 지나가는 거야.
- 행인? - 그래. 싫어? - 아뇨, 그럴 리가요…. 하지만 어떤 인물인지…? - 어떤 인물? - 어떤 인물이냐고? 행인이야! 행인! - 예…하지만 노인인지, 젊은인지, 어린애인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귀족인지, 상인인지, 거기에 따라 삶의 방식도 상당히 다를 텐데…. 미우치 스즈에,『유리가면』애장판 2권, 대원씨아이, 429~430쪽, 마야와 연극부장의 대화 중에서
아마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조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배우에게 제시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안내일 뿐, 결국 ‘조커’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철저히 배우의 몫이다. 그런데 조커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이름도 나이도 지문도 DNA도 치아기록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딘가에서 자랐을 터인데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설명할 단서도 없다. 그렇다고 조커 자신의 언행에 진정성이 묻어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자신의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 그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진짜’라는 느낌은 없다. 다만 있는 것은 단지 인간의 육체 안에 가두어져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한계도 느껴지지 않는 원초적인 악, 그리고 그 악과 마주했을 때 저절로 배어나오는 본능적인 공포감이다. 굳이 조커라는 캐릭터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묘사하는 것과 그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다크 나이트]의 가장 큰 난제이자 가장 큰 성과는 바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의 형상화에 있다. 강직하고 신념에 차 있던 하비 덴트를 광기와 분노가 입을 벌리고 있는 막다른 곳으로 몰아가고, 소박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선량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가던(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극한의 이기심을 이끌어내고, 고담시 전체를(그리고 하려고만 했다면 아마 전세계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리는 조커. 타인의 공포를 자양분삼아 더 큰 악을 낳게 하지만 정작 조커는 두 시간 반 동안 한번도 그 자신의 분노나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아주 조금씩, 상대방을 자극할 정도만 흘려보낼 뿐이다. 이러한 조커이기에 사실 배트맨도 투페이스 하비 덴트도 그의 적수는 되지 못 한다. 세 명의 캐릭터가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혹은 서로 물고 물리는 사슬처럼 엮여 있지만 사실 조커는 철저히 그들의 우위에 자리하고 있다. 차라리 조커가 다른 여느 악당들처럼 돈이나 권력이 목적이었다면 그걸 막으면 된다. 유치장 안에 갇힌 조커를 정말 죽을 정도로 두들겨 패서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조커는 배트맨의 마음 속 그늘을 간파하여 자극하고 하비 덴트 안에 숨겨진 투철한 정의감의 반대, 한쪽 면이 검게 그을은 동전의 양면성을 발견하고 이끌어낸다. 한때 고담시를 범죄의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정의의 사도로 여겨졌던 백기사 하비 덴트의 어둠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흑기사가 될 수밖에 없는 길로 배트맨을 인도하는 것은 바로 조커다. 결국 배트맨과 대치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하비 덴트가 될 수밖에 없다. 젊고 청렴하며 법과 원칙 이외에는 다른 어떤 잣대도 들이대지 않는 그에게서 브루스 웨인은 더 이상 배트맨의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엿본다. 솔직히 그가 아무리 밤의 고담시를 휘젓고 다닌다 한들 악당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르고 그가 악당들을 제압하는 방식 역시 악당들의 방식과 별 다를 바 없는 강압적인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처음에는 배트맨에 환호하던 시민들도 차츰차츰 고담시의 좀처럼 걷히지 않는 어둠을 배트맨의 책임으로 전가하며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사람이 아닌가? 그도 인간이고, 지치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쉬고픈 바람을 가진 한 남자일 뿐이다. 슬슬 지쳐갈 즈음에 그의 앞에 하비 덴트가 짠하고 나타난 것이다. 젊고, 활기차고, 실력도 있고 강단도 있고 무엇보다 선(善)과 정의를 추구한다. 더 이상 무거운 박쥐수트를 걸치고 밤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고담시는 평화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담시를 지켜줄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했던 하비 덴트가 투페이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배트맨은 자신의 인생이 여전히 고독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비 덴트가 레이첼의 죽음 앞에서 절규하며 거침없이 세상을 향한 증오와 원망을 뿜어내는데 반해 똑같이 사랑하는 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웨인은 하비 덴트에 비하면 훨씬 조용히 슬픔을 속으로 삼킬 뿐이다. 적어도 배트맨의 가면을 썼을 때라면 악당들 앞에서 버럭질이라도 할 수 있지만 배트맨의 가면을 벗은 브루스 웨인은 그 누구와도 자신의 고민을 나눌 수 없다. 결국 브루스 웨인이 감당했을(혹은 감당하고 싶었을) 인간적인 감정의 대부분을 하비 덴트가 이어받는데 이 과정이 꽤 재미있다. 철두철미한 신념을 바탕으로 합법적인 권위를 휘두르며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일이 없는 정의감을 내세우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순수하게 구애한다. 어쩌면 배트맨이 바랐을 그 모든 것을 하비 덴트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고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투페이스의 죄업까지 모두 자신이 품고 가겠다고 하는 배트맨의 대사는 언뜻 보면 참으로 담담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없이 무겁기만 한 의무와 선(善)을 위한 정의를 잠시나마 타인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오롯이 혼자 짊어질 수밖에 없음을 곱씹게 되는 쓰디쓴 독백이다. [다크 나이트]는 조커라는 이름의 악(惡)이 조종하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놀아나는 인간군상들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려다 결국 스스로의 광기에 잡아먹힌 한 인간의 절망, 또 자진해서 짊어진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더한 무게로 남을 뿐이란 것을 깨달은 또 다른 인간의 고독이 짙게 깔린 세계다. 과연 세상의 그 누가 조커와 맞닥뜨렸을 때 투페이스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고든의 아들처럼 배트맨의 정의를 거리낌없이 지지하고 응원하며 그를 감쌀 수 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크 나이트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트맨을 보며 결국 마지막 승리의 미소를 조커가 짓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인가? 정녕 하비 덴트가, 고든이 바라던 정당한 정의는 실현될 길이 없는 것일까? [다크 나이트]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던져놓고서도 결국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리는 고담시가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이 히스 레저의 조커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이상으로 나를 우울하고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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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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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퀄리브리엄(2002) [창고/영화볼 땐 조용히]감독: 커트 위머Kurt Wimmer(2002) 그 어드메의 왕님과 닮아보인다면 단지 기분 탓;
감정유발자들을 발각하여 처단하는 특수요원인 클레릭 중에서도 최정예 요원으로 손꼽히는 존 프레스턴. 그의 아내는 일찍이 감정유발자로 소각처분을 받았으나 그의 아들은 클레릭 예비교육을 받고 있는, 자나깨나 감정유발자들을 색출하는 데 전념하는 리브리아의 모범적인 시민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내와의 감정 교류도 전혀 나누지 못하는 리브리아의 1급 클레릭인 프레스턴. 그러나 자신의 옷을 개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보일 듯 말 듯한 표정의 변화를 보이고 아내 역시 그런 남편을 지그시 바라본다. 순간 들이닥친 부대원들이 프레스턴의 아내를 포박하려 하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요원들을 제압하는 그. 그것이 과연, 자신의 가족을 해하려는 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였을까, 아니면 아내를 ‘사랑’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반사적인 행동일까.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아내가 감정유발자로 소각된 기억마저 프레스턴에게는 자신이 지금까지 적발하고 처단한 여타 감정유발자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껏 그 어떤 감정의 노출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이기에, 매일같이 일어나는 자연현상마저 그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그저 무심히 바라보던 침실 창가 너머로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아침햇살이 새삼스레 눈을 찔러대고, 유리창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의 마음을 세차게 두드린다. 인위적으로 누르고 외면해오던 일상의 감동이 둑이 터지고 봇물처럼 몰아치는 그 순간, 프레스턴은 아무 말도 못하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침이면 해가 찬란히 떠오르고 밤이 되면 창백한 달이 은은한 빛을 흩뿌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천체의 움직임은 이제껏 모든 감정을 억압해왔던 프레스턴을 순식간에 압도해버린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금단의 과실을 한 조각 깨문 것마냥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줄달음치는 전율을 ‘느껴버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 어떤 장식도 없이 목언저리까지 꽉 채우는, 직선으로 떨어지는 클레릭의 옷차림은 금욕적인 신부의 사제복과 다름없지만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존 프레스턴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 특히 프로지움으로 감정이 억제되어 있을 때와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않을 때, 혹은 억제하고 있는 것처럼 애쓸 때, 영화의 막바지 하얀 제복을 입고 마지막 결전에 임할 때의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톤이 다 다르다. 모든 감정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리브리아의 모범적인 클레릭이던 그가 자신을 꽁꽁 묶어놓고 있던 족쇄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느 한 부분 급하게 치우치거나 혹은 늘어지는 일 없이, 그러나 딱 적당한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정점을 향해 간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줄 테지만, [이퀄리브리엄]에서 크리스찬 베일은 배우로서 그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차할 경우에는 영화 전체를 감당할 내공까지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창고 > 영화볼 땐 조용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3/0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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